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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영미 시인 / 겨울 선유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4.

김영미 시인 / 겨울 선유도

 

 

민박집의 발목은

밀물에 젖어 있었다

헤집는 난로의 불씨로도

돌이킬 수 없는 어둠

아주머니는 우럭매운탕을 끓이며

까나리액젓에 겉절이를 무치며

허름한 등대가 되어간다

그녀는 오래된 버릇인 듯 생선을 손질한다

비린내나는 일상은 비늘로 덮여있다

가시가 박혀 퍼득이는 그녀의 지느러미가 보인다

먼데 섬의 집들이 젖은 눈을 껌벅인다

그녀의 목소리도 물 너울에 잠겨간다

사는 일이란

막막한 시간을 소금 뿌려 절이며

가시조차 꾸욱 삼켜 보는 것

억류된 수평선

배들은 더 이상 길을 떠나지 않는다

등대는 이제 바닷길을

알려주지 못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담아둔

개조개가 갑갑한 듯 길게 혀를 내민다

 

 


 

 

김영미 시인 / 국화차 설화(說話)

 

 

낮 꿈처럼 짧은 생

운수 행각 하던 한 스님

오늘 입적하시다

 

바다가 보이는 산길

바다를 향해

마음 흐드러진 적 있었지

눈 시리게 바라보다

스스로 제 빛깔에 겨워 깊어진 죄

촘촘한 바늘 같은 가을 햇살아래

말하고 말았어

차가운 이슬에 젖은 밤을

부르트게 걷고 나서야

마음을 다 해도 가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았지

무릎을 꺾는 그 순간, 아찔한 향기의 죽비

내리친다

후드득 샛노란 말씀의 소나기

 

바다의 실핏줄이

훤히 드러난

그 산길 노오란 산국

오늘 한지위에서 온몸을 내어 말린다

지상에서 가장 고요한 다비식

바스락, 적멸을 향해 간다

 

 

 


 

김영미 시인(양평)

1975년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 서울시립대 철학과 졸업. 201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