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미 시인 / 겨울 선유도
민박집의 발목은 밀물에 젖어 있었다 헤집는 난로의 불씨로도 돌이킬 수 없는 어둠 아주머니는 우럭매운탕을 끓이며 까나리액젓에 겉절이를 무치며 허름한 등대가 되어간다 그녀는 오래된 버릇인 듯 생선을 손질한다 비린내나는 일상은 비늘로 덮여있다 가시가 박혀 퍼득이는 그녀의 지느러미가 보인다 먼데 섬의 집들이 젖은 눈을 껌벅인다 그녀의 목소리도 물 너울에 잠겨간다 사는 일이란 막막한 시간을 소금 뿌려 절이며 가시조차 꾸욱 삼켜 보는 것 억류된 수평선 배들은 더 이상 길을 떠나지 않는다 등대는 이제 바닷길을 알려주지 못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담아둔 개조개가 갑갑한 듯 길게 혀를 내민다
김영미 시인 / 국화차 설화(說話)
낮 꿈처럼 짧은 생 운수 행각 하던 한 스님 오늘 입적하시다
바다가 보이는 산길 바다를 향해 마음 흐드러진 적 있었지 눈 시리게 바라보다 스스로 제 빛깔에 겨워 깊어진 죄 촘촘한 바늘 같은 가을 햇살아래 말하고 말았어 차가운 이슬에 젖은 밤을 부르트게 걷고 나서야 마음을 다 해도 가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았지 무릎을 꺾는 그 순간, 아찔한 향기의 죽비 내리친다 후드득 샛노란 말씀의 소나기
바다의 실핏줄이 훤히 드러난 그 산길 노오란 산국 오늘 한지위에서 온몸을 내어 말린다 지상에서 가장 고요한 다비식 바스락, 적멸을 향해 간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강영은 시인 / 성체聖體 (0) | 2022.05.04 |
|---|---|
| 정이랑 시인 / 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 외 1편 (0) | 2022.05.04 |
| 김점용 시인 / 햇볕의 구멍 외 4편 (0) | 2022.05.04 |
| 김이솝 시인 / 버드나무 수목장 외 3편 (0) | 2022.05.04 |
| 이선균 시인 / 언뜻, 외 1편 (0) | 2022.05.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