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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영은 시인 / 성체聖體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4.

강영은 시인 / 성체聖體

 

 

빵이라 부를 때 이것은 존재한다

 

누룩과 불화하는 이것 때문에 상처가 아문다 상처를 길들이는 이것 때문에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닌다 피와 연합하는 포도주처럼 나의 내면이 뜨거워진다

 

커다란 다이아몬드의 흠집처럼 흠집을 깎는 고귀한 감정을 지니게 된다 수축하거나 팽창하는 감정은 존재의 지척(咫尺)을 드러낸다

 

빵이 되기 위한 밀가루처럼 존재에 선행하는 존재* 뼈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이것 때문에 나의 식탁은 밀밭이다

 

나의 굶주림은 밀밭 위로 날아오르는 새떼가 된다 이 하늘에서 저 하늘로 날아다니는 조직의 지체가 된다

 

만일 이것이 밀가루에 국한된 존재라면 쟁반 위에 놓인 한 잔의 포도주와 한 조각 빵은 식탁이 차려준 한 끼니 식사에 불과했으리라

 

쟁반 위에 물고기 그림을 그린다 먹고 배부른 까닭을 알지 못 하나 손가락 마디에 푸른 하늘이 스민다 물과 불과 공기가 관계한 한 덩어리 우주,

 

점의 빵 조각을 성스럽게 받든다 이것 때문에 나의 신(神)이 존재 한다

 

* 에를르 퐁티<기호들>에서

 

 


 

강영은 시인

제주도 서귀포에서 출생. 동국대 문예창착대학원 졸업 (문학 석사)  2000년 계간 《미네르바》등단. 시집으로『녹색비단구렁이』,『최초의 그늘』,『풀등, 바다의 등』『마고의 항아리』 『상냥한 시론詩論』과 시선집 『눈잣나무에 부치는 詩』등이 있음. 201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2015년 세종 우수도서, 한국출판공사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2006년 시예술상우수작품상, 2012년 한국시문학상, 2016년 한국문협 작가상 2018년 문학청춘 작품상 수상. 서울과학기술대학 평생교육원 시창작 강사 역임, 현재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한국문인협회 복지위원, 『문학청춘』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