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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시인 / 목이 달아난 돌부처
해돋이를 보려면 석굴암을 올라야 해 눈 비비고 초롱초롱 보아도 라훌라는 눈감고 있었어 불국사에서 아사달과 아사녀가 석가탑 그림자 속에서 연리지로 부둥켜안고 있었어 천마총의 말다래는 자작나무껍질에 무좀이 생겼어 포석정의 물길은 메마른지 오래고 빈잔만 구름 위에서 시를 끄적이고 있었어 변비에 걸린 견훤이 부러진 칼을 품고 경애왕 앞에서 무릎 꿇고 있었어 남산에 돌부처들은 목이 다 달아나고 없었어 온종일 다닌 발자국은 포토죤을 못 찾고 투명한 허무만 헛디뎠지 첨성대는 여름을 톱질하는 매미 울음소리에 기우뚱하고 기우뚱하고
제6회 열린시학상 시 부문 본상 이아영 시인 / 못
못이란 글자는 아무데도 못 가요 못은 한 번 박으면 움직이지 못 하지요 움직이면 굽어서 못 쓰잖아요 못이란 연못이지요. 흐르지 못 하는 물이잖아요 또 못 字가 들어갔네요. 연못 속엔 연꽃이 탁한 물을 정화시켜주지요 못이란 못 할 일이 없다니까요 못 할 일이 있다는 말도 되지요 못비가 오면 못밥을 먹을 수 있거든요 못이란 다 못하는 게 아니에요 아무데나 못 박으면 안 되지요 편자에나 못을 박지 식도에까지 못을 박다니 참치횟집에서 참치눈물 술을 마셔본 사람은 알아요. 딱 한 모금이 목에 걸려 못 넘어가거든요 못이란 뭐든지 자유자재하는 힘을 갖고 있다니까요
《열린시학》201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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