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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수상 시인 / 나무 자세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5.

김수상 시인 / 나무 자세

 

 

뿌리를 박고 곧게 서 있는 나무를

몸으로 나타낸 동작이다

몸을 바르게 세워 외발로 균형을 잡는다

외발로 서 있으려면 발바닥에

수없이 많은 실뿌리를 내려야 한다

바닥을 움켜잡고 있는 저 무수한 발의 발가락들

발의 발가락들에서 나온 발가락들의 안간힘

안간힘의 입자들과 파동들

인간은 꿋꿋한 것 같지만

멀리서 보면 외발로 서 있는 나무다

버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무다

발의 발가락에서 번져 나온 어린 발가락들의 발가락

아, 저 발그레한 어린 미동들

예고도 없이 불어오는 저 강약(强弱)의 바람들 견디려면

속으로 얼마나 많은 안간힘을 써야 하는지

요가를 하며 알게 되었다

 

 


 

 

김수상 시인 / 편향의 곧은 나무

 

 

비탈에 선 나무들을 보았다

오른편의 경사가 심각하니

왼편의 흙들을 꽉, 움켜잡았으리라

(나는 비탈에 정이 틀어 그 언덕에 오래 머물렀네)

그러면서

편부인 너를 생각하였다

양쪽에 반찬을 놓은 적이 없었으므로

오직, 한 가지 반찬만 먹는

너의 편식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가운데에서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폴짝 폴짝 깨금발을 뛰며 나들이를 가는

아이를 너도 보았느냐

(괜찮다)

없는 한쪽에도 이제는 같은 키의 풀들이 도탑게 덮였다

비탈에 선 나무들이 바람을 타고 춤을 추고 있다

오른편으로 밀릴 때, 왼편으로 한 뼘 더 뿌리내린다

(굳세게)

오늘 부는 바람은 우리의 편,

바람은 발전하는 경제처럼 불었으리라

 

 


 

 

김수상 시인 / 그러고도 시를

 

 

 나쁜 꿈을 꾸었느냐? 예 나쁜 꿈을 꾸었습니다. 무슨 꿈을 꾸었느냐? 제가 제 눈으로 똑똑히 본 일을 여럿이 있는 데서 증언해야만 그 일이 바로 서는 일이었는데 저는 침묵했습니다. 왜 침묵하였느냐?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입으로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울었느냐? 예 울었습니다. 왜 울었느냐? 그 사람이 자기의 죄를 고백하지 않고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런데 왜 울었느냐? 저보다 먼저 그 사람의 죄를 묻는 의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저보다 나아서 울었고 죄를 지은 그 사람이 또 가여워서 울었습니다. 무슨 죄이더냐? 사람을 죽였는데 죽일 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일보다 더 큰 죄는 자신을 속인 죄라는 생각을 꿈에서도 하였습니다. 그러고도 시를 쓴다고 했습니다.

 

- 시집 <사랑의 뼈들> (삶창, 2015)

 

 


 

김수상 시인

1966년 의성에서 출생.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졸업.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시 전공 (중퇴). 2013년 계간 《시와 표현》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랑의 뼈들』, 『편향의 곧은 나무』, 『다친 새는 어디로 갔나』가 있음. 제4회 박영근작품상 수상. 전 월간 『우먼라이프』 기자. 현재 대구경북작가회의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