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숙 시인 / 서해와 동침하다
공중을 덮으며 한 떼의 철새들이 밀입국해 온다 기러기 떼 가창오리 떼 억새 밭 너머에 콩알처럼 깔려 있다 유효기간이 뚜렷이 각인된 바코드를 등에 찍고 저렇듯 세상을 경유한다
서해는 해감을 토하며 뒤척이고 뼛속까지 붉은 서약의 저녁이 뜨겁다
사르륵 새들의 옆구리에서 깃털 떨어지는 소리 들리고 이제 막 서쪽에 닿는 이는 옷을 벗는다
시집『서해와 동침하다』문학의전당 2009
유현숙 시인 / 아산만 小景
오래전에 그곳에는 난데없이, 일제히, 무리지어 나는 새떼들이 있었다
누가 생철판을 공중에서 가위질 하는가 희번덕이며 흩날리는 저 은백색의 연모戀慕들
햇볕 아래서는 맹목마저 이다지 눈부셔 도려진 허공이 쾌활快闊하게 갯고랑에 박힌다
주워든 허공 한 조각으로 내장을 긁어대며 바람을 되질하는 격렬한 오후가 있었다
『애지』 201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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