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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인육 시인 / 가을의 비망록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16.

김인육 시인 / 가을의 비망록

 

 

최후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이다

서늘한 눈매로 서 있는 가을 나무는

 

지는 해 저녁놀 곱게 물들이듯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고 싶은 것이다

 

한때 뜨겁게 사랑하지 않은 자

어디 있겠고

 

마침내 결별이 아프지 않은 자

어디 있겠는가

노랗게 혹은 발갛게 울음의 색깔을 고르며

불꽃처럼 마지막을 타오르고 있다

 

빛나는 한때를 간직한 가을 나무는

알고 있다

 

하나 둘 떨구는 이파리마다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하며

 

막막한 절망을 지워 가는 법을

그 간절함의 빛깔로

 

눈 감아도 선연히 되살아 오는 얼굴들

가슴 깊숙이 나이테로 새겨 두는 법을

 

 


 

 

김인육 시인 / 사랑의 물리학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제11회 미네르마문학상 수상작

김인육 시인 / 나를 울게 하소서

- 어머니의 세족

 

 

발이 운다

울음은 어디에서 정령처럼 깃들어 있지만

발이 울면 온 몸이 따라 운다

온 몸 구멍에서 붉은 눈물 쏟는다

 

모두를 위로 밀어 올리느라

늘 밑바닥만을 전전했던 맨발

그래서 발의 눈물에는

고단한 흙 냄새가 난다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거품 냄새가 난다

 

최후의 만찬이 있기 전

한 거룩한 사내는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는데

 

그녀의 발이 벌벌 우는 밤

오늘은 죄 많은 내가

거룩한 그녀의 발을 씻어준다

 

나를 밀어 올리느라

평생 맨발이었던 여인을 안고

돌아온 탕아가 눈물의 세족식을 한다

애달팠던 그녀의 최후를 씻는다

 

발을 씻어주는 것은

진정한 섬김이요

사랑의 표징일지니

눈물 다하도록, 내 죄를 세족한다

 

 


 

김인육(金寅育) 시인

1963년 울산 하에서 출생. 1986년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 2001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 2000년 《시와생명》 신인상에 당선. 2001년 제2회 《교단문예상》 당선. 시집으로 『다시 부르는 제망매가』 『잘가라, 여우』 『사랑의 물리학』이 있음. 현재 강남시문학회 동인, 계간 『미네르바』편집위원이며  양천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