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서연우 시인 / 안데스 콘도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15.

서연우 시인 / 안데스 콘도르

 

 

미안해요 나는 날아오를 거예요

 

한 번 사냥에 실패한 먹잇감은

다시 공격하지 않아요 나는

 

상승기류를 찾고 있었어요

마추픽추에서 그때

찾아오는 손님은 기꺼이 만나는 사람과

황금만 반기는 사람의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말해본 적 없어요

울어본 적 없어요 나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이 되는

육체를 정복하고 영혼을 정복해요

당신이 죽어요 모두 죽어요

칼과 십자가를 든 짐승의 궤적

내가, 내 몸이 당신을 찾고 있어요

콘도르칸키

 

일어날 거예요 나는

하늘을 움켜쥐고 끝까지

물어뜯을 거예요 살아남은

공중의 시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러니까 날갯짓은 날아오를 때만 해요

 

반년간 『서정과 현실』 2021년 하반기호 발표

 

 


 

 

서연우 시인 / 비무장지대

 

 

백 년 전에도 오늘을 날았던 하루살이가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 안에서

비를 피하고 더위를 피하고

하루살이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은밀한 얼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신을 만나기만 하면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살아본 적 없는 바이러스 속에는

하루하루를 집어삼키는 비대면 속에는

 

생각해보면 내가 내 입을 지운 하루살이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자유인 줄 몰랐습니다

날갯짓 멈춰버리면 곤두박질쳐버릴

 

하루살이가 한없이 날아서 만든 비무장지대인 줄 몰랐습니다

 

어쩌자고 잠도 안 자고 날고 있는

후렴으로 한없이

떨고 있는

 

계간 『시사사』 2020년 겨울호 발표

 

 


 

서연우 시인

2012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으로 『라그랑주 포인트』(현대시, 2018)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