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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인수 시인 / 철자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18.

문인수 시인 / 철자법

 

 

겨울 포도원의 포도나무 넝쿨들은

줄줄이 팽팽하게 가로질러 놓은

철선을 따라 삐뚤삐뚤 끌려가고 있다

 

그래, 삐뚤삐뚤 삐져 나오는 이 철자법!

울퉁불퉁 만져지는 것이 거친 계류같다

 

결박당하지 않는

혈행(血行)이 있다

이걸 붉게 마셨구나

 

혹한의 한 복판에다가

굵게 양각하는,

그렇게 계속 길 뚫는,

오 오매불망오매불망 가는,

자필의 끔찍한 기록이 있다

달콤한 사랑

 

 


 

 

문인수 시인 / 6월

 

 

풀물 들지 않은 풀이 없구나.

우포늪 돌며 여러 풀 이름을 듣는다

개구리밥 물 갈대 창포 사초 부들 고랭이 생이가래 개여뀌 누운기장대폴

풀물 들지 않은 풀이 없구나.

둑으로 올라와 풀의 전 세계를 본다

풀들은 제각기 군락을 이루고 있다.

높고 낮은 키의 소수민족들

그 초록의 말씨가 조금씩 무더기 무더기 다르다.

그러나 풀물 들지 않은 풀이 없구나.

햇살 아래 바람 속 물이랑 위에

젖은 것 말리며 또 젖으며

저런 춤, 함성처럼 고요히 우거지고 있다.

 

 


 

문인수 시인(1945-2021)

1945년 경북 성주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중퇴. 1985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늪이 늪에 젖듯이』(심상, 1986)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문학아카데미, 1990) 『뿔』(민음사, 1992) 『홰치는 산』(만인사, 1999) 『동강의 높은 새』(세계사, 2000) 『배꼽』(창비, 2008) 이 있음. 1985년 심상 신인상. 1996년 제14회 대구문학상, 2000년  제11회 김달진문학상, 2003년 제3회 노작문학상, 2007년 제7회 미당문학상 수상. 2007년 제10회 가톨릭문학상. 2016년. 동리목월문학상 목월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