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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금숙 시인 / 무거운 연기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18.

나금숙 시인 / 무거운 연기

 

 

 모든 변신을 사랑한다 무너지며 포효하는 검은 탑, 검붉은 벼랑, 광풍이 뒤집는 사시나무 잎사귀, 옆구리를 찢는 물고기의 물결,

 

 벌어지는 꽃잎 속에 파묻힌 거미, 참나무 껍질에 이빨을 박는 박새의 착란,

 

 오 나는 변형을 사랑하네 네가 나를 꾸욱 터치할 때, 오십 센티 끈끈한 바탕 화면에서 응고된 세계가 밀가루처럼 풀리고, 그러므로 땅 속 지도를 바꾸는 유충은 숭고하다.

 

 무겁게 날개를 젓는 알바트로스처럼 땅 속을 휘젓는 그들은 부드러운 살 속에서 직선으로 달아나려고 한다

 

 휘어짐이 새 근육을 만들면, 응집된 구석은 밀려나고 밀리고 밀려 얇아지고 그 위에 지느러미들, 힘찬 꼬리들이 지어내는 모든 자웅동체들을 사랑한다.

 

 자웅동체 아닌 것들을 사랑한다 하나였다가 나뉘어진 것들을, 내 몸인 듯 내 몸 아닌 내 몸 같은

 

 그러면서 휘발하려는 향을 가두는 향 제조사들 뚜껑을 닫는다, 세기의 급한 눈꺼풀을.

 

계간 『문학과 창작』 2016년 봄호 발표

 

 


 

나금숙 시인

전남 나주에서 출생. 200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 나무 아래로』(새로운사람들, 2003)과 『레일라 바래다주기』(시산맥사, 2010)가 있음. 서울시 공무원과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시산맥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