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금숙 시인 / 무거운 연기
모든 변신을 사랑한다 무너지며 포효하는 검은 탑, 검붉은 벼랑, 광풍이 뒤집는 사시나무 잎사귀, 옆구리를 찢는 물고기의 물결,
벌어지는 꽃잎 속에 파묻힌 거미, 참나무 껍질에 이빨을 박는 박새의 착란,
오 나는 변형을 사랑하네 네가 나를 꾸욱 터치할 때, 오십 센티 끈끈한 바탕 화면에서 응고된 세계가 밀가루처럼 풀리고, 그러므로 땅 속 지도를 바꾸는 유충은 숭고하다.
무겁게 날개를 젓는 알바트로스처럼 땅 속을 휘젓는 그들은 부드러운 살 속에서 직선으로 달아나려고 한다
휘어짐이 새 근육을 만들면, 응집된 구석은 밀려나고 밀리고 밀려 얇아지고 그 위에 지느러미들, 힘찬 꼬리들이 지어내는 모든 자웅동체들을 사랑한다.
자웅동체 아닌 것들을 사랑한다 하나였다가 나뉘어진 것들을, 내 몸인 듯 내 몸 아닌 내 몸 같은
그러면서 휘발하려는 향을 가두는 향 제조사들 뚜껑을 닫는다, 세기의 급한 눈꺼풀을.
계간 『문학과 창작』 2016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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