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연 시인(합천) / 가로등
고속도로를 달리던 새벽녘 졸음에 겨운 남편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토막 잠을 청한다 무심코 차창 밖 가로등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지쳐 보인다 굽어있는 어깨가 40대 가장 같다
'이번 여름휴가 지나면 1000명을 짜른대' 그 소문에 소도시가 출렁댄다 아내들은 세금고지서, 아이들 학원비, 카드 대금 그런 일상을 꿰느라 남편의 날 선 마음 읽지 못하고 언제나 왕자,공주로 자란 아이들은 아버지의 낯빛 따윈 관심도 없다
그믐밤이든 보름밥이든 꾀부린 적 없는데 충혈된 그 눈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없었다
파리해진 어깨 너머 아침이 오고 있다
그들을 이끌어 줄 희망의 빛 어디 숨어있나?
김종연 시인(합천) / 가마가 운다
살기 위해 쏟아내는 비명은 닮아 있다 가마의 불꽃들이 어미의 산고처럼 산산이 터질 수 없어 뱉어내는 저 울음
몸의 진자운동이 그들을 읽는 시간 지진의 전조처럼 땅이 울고 산이 운다 숨으로 오는 것들은 막아낼 재간이 없다
<시조미학 2021. 가을호>
김종연 시인(합천) / 아프리카 부처님
볕에 탄 얼굴에서 아프리카를 떠올리고 뜻 모를 염불 소리에서 부처님을 떠올린 여덟 살 아이의 상상력이 탄생시킨 그 남자 팔순의 아버지 대신 들녘의 보모였던 그 남자의 일요일엔 휴식이 없었다. 물길을 열고 닫으며 생명을 키워냈다. 노부가 떠난 뒤에도 그의 삶은 그대로다 일과를 마친 후 합장의 시간은 늘고 아이는 청년이 됐다 들을 닮아 푸르른
- 시집 '아프리카 부처님, 알토란북스, 2021
김종연 시인(합천) / 특강요청
바람의 날갯짓을 몸에 지닌 당신이
송곳 하나 꽂지 못하는 계단 틈 여윈 곳에
꽃잎을 틔운 사연을 청해 듣고 싶습니다
-『아프리카 부처님 』 알토란북스 2021.
김종연 시인(합천) / 거미줄
공치는 날 다반산데 비 오는 날 또 다반사
우의 없이 알몸으로 허공을 잇대보지만
빗물만 오종종 맺혀 눈물처럼 글썽인다
김종연 시인(합천) / 언양읍성
군데군데 찢겨나간 낡은 소설책처럼 줄거리 툭, 툭 끊긴 빛바랜 이야기가 전기수 서설을 풀듯 사람들을 붙든다
시간의 걸음 쫓다 제 빛을 잃었지만 은유와 상징으로 경계를 지켰다. 언젠가 일어서리라 숨결 꼬옥 붙든 채
영화루 처마 끝에 보름달이 걸리고 옛 성벽 자연석들 이야기보따리 풀면 해자도 물길을 열고 밤새 귀를 세운다
김종연 시인(합천) / 풋,
두 주먹 불끈 쥔다 알곡이 되겠노라
"명문대 못 나오고 스펙도 부족하네요."
이력서 내밀 때마다 쭉정이가 되어 간다
김종연 시인(합천) / 아라홍연
그림 속 정물처럼 칠백 년을 살았습니다 그댈 부른 손짓 몸짓 메아리로 돌아오면 엇박자 연기 되어서 눈물 달고 선 하루
십 년만, 아니 백 년만 당신 기다릴 테야 하루에도 수천 번 접은 마음 허물어지고 오감을 여닫은 자리 멍울진 바람希들만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의미가 되고 싶다 시간을 넘고 넘어온 주문이 된 기도 한 줄 천지가 숨을 참는다. 늦은 응답 미안해서
김종연 시인(합천) / 동행
너는 한 방울 물로 자라나는 종유석
석순처럼 말없이 나는 기다리고
그 모습 지켜보느라 세상도 슬로모션
김종연 시인(합천) / 가덕도 로슬린
담이 높아질수록 바람은 키를 세운다 기도가 되지 못한 속엣말은 까칠해지고 여섯 살 어린 아들은 파도를 밀고 있다
"필리핀 가지 말고 아이랑 여서 살아줘" 산에 누운 남편의 나뭇잎 연서 한 장 답신의 메아리 속에 적지 못한 안부만
"현우 잘 키울게요" 그 뜨건 언약으로 빛 잘 드는 마당가 무궁화를 심는다 볼우물 깊은 얼굴로 소인 찍는 로슬린
김종연 시인(합천) / 분꽃 엄마
그 옛 날 봉 화 처 럼 치 솟 고 싶 었 을 까
꽃잎을 접고 누운 요양병원 긴 하루 나 여기, 살아 있다고 한번쯤 다녀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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