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람 시인 / 명중
사내의 울퉁한 팔뚝에 한 시절의 순정이 명중되어 있다 그러나 그 무엇에다 명중시키기란 쉽지 않다는 것 저 하트 모양에 박혀 있는 화살처럼 깊이 박힌 다음에는 명중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은 지금은 뒤쪽에서 덜 풀린 힘이 부르르 떨고 있는 여진의 날들이라는 것이지 또한 허공으로 날아간 것들 그 떠난 자리는 흔적이 없다는 것이지 다만 죽음으로 가는 길 위에는 누구나 명중되어 있다는 것이지
기마족(騎馬族)들에게는 적에게 허점을 보일 때가 화살을 날릴 때란다 그 무엇을 과녁으로 삼을 때가 가장 방해받기 쉬운 때라는 것이지
숨 한 번 고르는 시간이 영원히 숨을 끊을 수 있을 때라는 것이지 내 몸이 과녁이 되는 때라는 것이지
아직 제대로 된 들숨 한 번 들이마시지 못한 시절인데 명중의 시절이 내게로 와 박히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 부르르 떨리는 때가 있다 아직 깨끗한 과녁이 가끔 두렵다 그러나 이 부르르 떨리는 것들, 고통은 늘 뒤쪽에 있다는 것이지 그러다가 더 이상 떨림도 없을 때가 내가 제대로 된 과녁이 되는 때라는 것이지 사내의 울퉁한 팔뚝에 박힌 그 화살처럼 누군가의 마음에서 푸릇하게 사라져간다는 것이지.
『문학사상』(200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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