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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서영 시인 / 유채는 눈부시고 노랑은 깊어져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6. 11.

장서영 시인 / 유채는 눈부시고 노랑은 깊어져요

 

 

먼저라는 말이 노랑일 것만 같아

보이지 않는 쪽에서부터 노랑이 싹 트는 것만 같아

요보록사보록 스삭거리는 본능을 상상해요

 

애염을 돋구는 삼월의 아랫목

여린 꽃대를 세우고

소소리바람의 기세에 폭죽처럼 터져요

 

소란의 조짐을 보이는 일기예보에도

가끔씩 찾아오는 난기류에도 아랑곳없이

찰나가 되는 봄날

펼치거나 오르거나

노랑이 노랑을 불러오고

아프고 흔들린 만큼 사부작사부작 향까지 덧붙여요

 

내 안에 나비 한 마리 꿈틀거려요

겁에 질린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애착과 악착이 엉켜

노랑의 근처에 앉아요

 

무더기무더기 어우러져 애절한 얼굴 불러오고

유채밭 앞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했던 사람들

청명 즈음엔 기억 속을 빠져나오고​

섭지코지는 지금 알싸하게 몸살을 앓아요

 

 


 

 

장서영 시인 / 협착의 헤게모니

 

 

뼈와 뼈 사이가 수상하다

경추의 1번과 5번이 밀착되고

요추의 3번과 4번이 뒤틀렸다

그래서 넓어진 건 통증, 다물어지지 않는 연속성

엉덩이는 의자와 협착하고

마감일은 나와 협착하는데

몸에 담긴 뼈와 말에 담긴 뼈가 서로 어긋나서

삐딱한 시선과 굴절된 자세를 도모한다

책상과 내가 분리되기까지

뼈가 중심이란 생각을 한 번도 못했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키보드 소리는 경쾌하고 새겨진 문장들은 마냥 과장됐다

어긋남은 순간이었다

되돌아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건 언제나 나였고

오로지 솔직한 건 내 안의 그녀였다

움직이는 팔을 따라

마우스 줄을 따라 고이는 불협

예민해진 신경과 굳어진 근육 사이로

아픔이 비집고 들어와

지금 여기가 버겁게 흘러내렸다

무게중심이 무기력 쪽으로 기운다

사랑도 관계도 전부 불편하다

결심만 남아 있었다는 듯, 처음부터 떠날 사람이 떠났다는 듯

연애에 관한 시는 끝내 완성을 거부했다

난 이제 누구와도 협착할 수 없는데

너 하나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절망이라는 단어가 재빨리 들러붙었다

 

월간 〈모던포엠〉 2021년 4월호

 

 


 

장서영 시인

2020년 《열린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