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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근석 시인 / 마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28.

이근석 시인 / 마임

 

 

 계속해서 문이 열렸다

 

 나는무한히 열리는문 앞에서 몸이었다

 

 춤

 춤

 춤

 

 나는 춤 속에 있었고

 춤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걸음 속을 걸어가며

 내게서 고요한 말들을 옮겼다

 

          뜬다, 라는 나의 말에서

 열기구가 떠오르고 있었다

 

 자주 이 장면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나보다 더 오래된 버릇이어서

 

 그러면 늘 떠올랐다

 열기구 안에는 내가 있었고

 

 열기구

 아래로

 떨어지는 그림자

 그림자들을

 보았다

 

 나의 수평들을

 나의 한참을

 

 나인

 나일

 나는

 

 


 

 

이근석 시인 / 농담

 

 

 내가 네게 꽃을 사 가면 웃기겠지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너무 많은 이야길 쏟다

 하던 이야기 멈출 때

 

 벌어지는 전개들

 

 너는 창밖 조용한 새에 대해 집중하고 있어

 고개를 돌리고

 

 내가 말하는데도, 너는

 

 한 번읕 천천히 늘이면

 너의 긴 한 번이 된다

 아주 긴 한 번의 새가 된다

 

 내 말은 나의 공간

 그것은 너의 긴 새에 대해

 조금 관여할 뿐이지만

 

 그 새가

 긴 창공을 시작하려 전

 나는 네게 뼈는 사람이 된다

 말하는 얼굴이 된다

 

 깜빡 졸다 깨었는데

 앞사람 군장에 머리를 박고 유격장에 끌려가는 장면이 하나

 분필이 졸고 있는 내 이마를 맞춘 후 정적 된 교실의 장면이 하나

 그것들이 서로 자리바꿈한다면

 

 또 이런 말

 

 좀비가 마당에 피어나고 있다*

 천천히 걸어오는 좀비가 나라면

 감염된 내가 네 앞에 나타나

 금 가득한 얼굴로 다가온다면

 

 그때,네 얼굴이 커다랗게 클로즈업된다

 

 빈

 

 흰

 

 너의 얼굴에서

 새가 날아오른다

 

* 요로고스 란티모스  <송곳니>.

 

 


 

이근석 시인

1994년 충남 논산 벌곡에서 출생. 2012년 고등 검정고시 합격. 2021년《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