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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점미 시인 / 얼굴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29.

김점미 시인 / 얼굴

 

 

이것은 책임에 관한 것이다

시간에 대한

그 시간을 견딘 것에 대한

자신만의 계산법으로 재단된, 단 한 벌의 맞춤옷

그 옷은

입는 사람과 밀착되어

한 사람의 피부가 되고

한 사람의 인격이 되고

한 사람의 인생이 되고

마침내 그 사람 자체가 되는

 

이것은 취향에 관한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아름다움을 형성한 깊이에 대한

자신만의 기법으로 그려낸 단 한 편의 회화

숭고함과 추함으로 양분된 이데올로기로

명암과 채도와 광도의 섬세한 차이로

물과 기름의 불협화음으로

마침내 그 사람 자체가 되는

 

이것은 흔적에 관한 것이다

로르카가 달리의 작품에 붙여준 이름 리틀 애쉬*처럼

한 사람의 온전한 기억에 바쳐져

말끔하거나 울퉁불퉁한 시간에 대한

거대한 먼지 속의 먼지

소용도는 실체의 모퉁이 속으로 고이는

소멸의 길고 느린 자국들

가장 도전적인 창작품

소름 끼치게 치밀하고 직접적인

인간의 기록에 관한 것이다

 

*리틀 애쉬; '작은 재'라는 이름은 1927년 로르카가 달리의 그림에 붙여준 제목. 2008년 폴 모리슨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됨.

 

시집『오늘은 눈이 내리는 저녁이야』(산지니, 2021) 중에서

 

 


 

김점미 시인

부산 출생. 부산대 독어교육과 및 동대학원 졸업. 한국해양대 유럽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2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시집 『한 시간 후 세상은』 (2014 도서출판 북인). 부산작가회 회원, 시인축구단 글발 회원.. ‘글발’ 공동시집 『사랑을 말하다』(2005년), 『토요일이면 지구를 걷어차고 싶다』(2012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