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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지혜 시인 / 저녁에 오는 사물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31.

한지혜 시인 / 저녁에 오는 사물들

 

 

모른팔의 어둠이 오고 왼팔의 빛은

 

택시를 타고 갔어

 

이후 반복되는 망각의 경험들

유리 썬팅필름

가운데 식탁으로 모이기 시작해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이 접히는 세계

척추로 미끄러지다 부서지는 소소한 기척을

피로 봉합하기

 

오믈렛으로 시작하는 순환

 

우연에 맘을 기울였던

관계

 

아직 지킬 수 없는 나이프와의 약속

복도를 지나 롤빵의 계단을 자꾸 내려가 차가운 문 뒤 쪼그리고 앉은 구석,

 

경계

 

트라우마의 신호마다 포개지는 기이한 감각

빛 속에 녹은 얼룩

허브티

다른 허무로 태어나려 충동이 출몰해

 

충돌

 

충만을 알지 못해서

증거물과 흔적들을 꺼내 아스파라거스처럼 펼쳐놓아

얼굴 불안한 표정

 

거짓말이라고 말을 해

 

레코드 조각을 조합해

가슴으로 돌아와

화이트 성좌로 나타나 와인처럼 흩뿌려지게

음악이 나직이 지나가게

 

달칵,

책상 위 스탠드 불을 켰다.

익숙한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노트북, 메모지, 다이어리, 볼펜 그리고 시집.

 

한지혜 시인의 시집 〈저녁이 오는 사물들>

 

 


 

 

한지혜 시인 / 예고 없음에 대해

 

 

예고 없이 찾아오는 안개에 새는 날다 떨어지는데

 

나는 발바닥에 놓인 믹서기 새의 날갯짓 돌고 있어 마와 바나나는 발바닥이 없는데 유리 문을 열고 잘 가 하고 오다 예고 없이 만났던 안개

사라지는 다리로 돌아나갔던, 부드러운 안개를 마셨던 바나나 새의 날개를 믹스해 달콤한,

새였을까

 

너는 예의와 절차 추적과도 무관한 상태

사라진 발톱에 대해 신급 예외 되는 안개에 대해 판결 없는 너의 형벌에 대해

안개여서 앞을 볼 수 없는 수풀의 끝자락

균열이다

다가갈수록 희미함 그래서

 

너와는 이별이다

유스티티움이 되는 시간, 난다는 두려움, 안개를 잊는 사건

 

불가능에서 가능 사이 예감으로 놓이는 투명 수채화, 와선하는 새의 나무들, 길 위로 발톱만큼씩 자라나,

구원이다

깨어난다고 말했다

 

같이 가야지

도시의 출근길

사라지던 새들이 날고 있다

 

*유스티티움 justitium (라틴어 재판 정지, 중지, 휴무 등....

* 와선 : 한 점을 중심으로 감기는 현상, 불이 돌며 흐르는 현상 등

 

한지혜 시집 『저녁에 오는 사물들』, 포엠포엠) 에서

 

 


 

한지혜(韓智慧) 시인

인천광역시 대청도에서 출생. 아호는 초우(艸友), 또는 운서(雲瑞), 1980년 월간 《신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마음에 내리는 꽃비 』(한누리미디어, 1998)와 『차와 달의사랑노래』(소리들, 2005),  『두 번째 벙커』(시산맥사, 2015)가 있음. 2014년 시흥시문화예술발전기금 수혜. 갯벌문학 작가상 수상. 불교문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시산맥시회 특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