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림 시인 / 횡재
산 중턱 으슥한 무덤가 별빛 산허리 부여잡고 사랑 고백하는 밤, 낮잠 실컷 즐긴 난봉꾼 나비 슬슬 바람기 발동하는데 마음에 품었던 가시 붓꽃 남편 집 비운 사이 오늘 밤 기어이 품고 말리라 밤눈 어두운 나비 이 집인가, 저 집인가 자꾸 헷갈리는데 마음은 급하고 에라! 모르겠다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가 덮치 긴 했는데 어째 표정이 영 신통치 않더라
날이 밝자 할미꽃 고목에 꽃이 피었다며 지팡이 산 아래로 냅다 집어 던지고 허리 곧추세우며 빨강 저고리 옷고름 풀었다 매었다. 요염한 미소 짓더라
김명림 시인 / 풍경
콩잎 비단 금침 깔고 오뉴월 땡볕 아래 정사 벌이고 있는 무당벌레
보랏빛 야릇한 눈으로 몸 비비 꼬며 훔쳐보던 콩꽃 허연 엉덩이 내리까고 참았던 오줌보 쏴 쏟아내고
마른 침 꿀꺽 삼키며 넋 놓고 바 라보던 고구마 단단해지는 몸. 주체 못 해 땅속 깊이 파고드는
김명림 시인 / 시인 마을
지리산 산행길 쌍계사 입구 매표소 있던 자리 시인 마을엔 시인은 보이지 않고 버선발로 뛰어 나온 시詩들이 반갑게 맞이하였네 시詩에 허기진 나를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하는 무료 급식소 같은 곳 산행은 잊고 고봉밥 한 사발 비웠으니 불일폭포 올려다보며 트림 한번 하면 바람 소리, 들꽃향기, 솔냄새 서로 어우러져 시詩 폭포 되어 펑펑 쏟아져 내리겠네
김명림 시인 / 우연처럼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내가 매번 정우영 이라고 읽는 정우정 이란 음식점 간판이 있는데요 좁은 길가 맞은편엔 대나무 계단이 높이 올려다 보이고 나무벤치에 낙엽이 가득 쌓인 작고 아담한 공원도 있는데요 가끔, 정우영 시인이 멋진 모습으로 길가에 세워둔 車에서 내려 정우정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요 어느 날, 내 글에 동백꽃 연들을 달아준 정우영 시인을 만나 서산 사람을 닮은 게국지*로 점심을 먹고 낯술도 살짝 한 잔 걸치고요 노란 은행잎 단체로 소풍 나온 나무 벤치에 앉아 마음이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시詩 흥에 겨워 어깨까지 들썩인다면 이보다 더 좋은 무릉도원이 또 있을까요?
* 서산의 토속음식
김명림 시인 / 자두
붉은 자두 한 알 조물조물 만지다 말간 어머니 숨소리 듣습니다
쉰둥이인 내게 젖가슴 살살 문질러 입에 물려주던 부드러운 사람 넋 나간 창가에 앉아 낡은 세월 보듬고 먼 산 바라기 하는 산수(傘壽) 의 어머니
햇볕 속, 자두 씨 한 알 속까지 말라갑니다
김명림 시인 / 나만의 시詩
모든 날개 있는 것들은 애써 자기의 깃털로 바람을 만들고*
서정춘 시인의 시처럼 무릎에 멍이 들 정도로 탁! 칠 수 있는 단시를 쓰려면 시를 산山 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아야 한다네
죽을 힘을 다해 정상까지 홀라 깃발을 꽂으려는데 남의 깃털을 뽑아 감히 시를 쓰려 하다니 서정춘 시인이 꽂은 깃발이 내 깃발을 휙, 뽑으며 호통을 치네
나만의 시를 찾기 위해 가시덤불을 헤치며 어두운 산속을 헤매고 있네 붉은 피에서 단맛이 나네
* 서정춘 시인의 시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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