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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택희 시인 / 전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3.

김택희 시인 / 전갈

 

 

 경계에서 모두 큰 아가리에 키스를 했다 모서리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난 겁이 없는 계절 묵묵히 애리조나사막으로 향했다 귀가 살짝 들린 카우보이모자 너울진 사막 붉은 산에 오르는 노을을 담아 조감도를 그렸다 가도 가도 보이는 것은 알고 있던 조각들, 목말랐다 달빛에 넘어지는 날에는 평원의 모래가 물로 보였다 쪼그린 잠에 열꽃이 돋고 내장이 마른다 황야에 나와 나를 쫓는 내 그림자뿐 혼잣말이 휑하니 귓가를 스친다 비상약은 동이 났다 꼬리의 독을 약으로 써야 한다

 

 오늘밤도 커서를 마주한다 도드라진 당신의 까만 눈동자에 시선을 박는다 환락 같은 전갈(傳喝)이 오기를

 

 


 

 

김택희 시인 / 아직도, 때때로 그리고 자주

 

 

원시림을 걷고 있어요

백악기를 건너온 메타세쿼이아나무숲 지나

물푸레나무 사이로 바람이 길을 트네요

나무 냄새 찰박해요

지금도 생각하죠

눈 안에 갇혀 있는 말

아무리 더듬어도 눈동자 끝에서만 가물거릴 뿐

터지지 않던 기억

당신은 없나요

새소리처럼 생생한데 그릴 수 없어요

좁은 계곡에 불시착한 헬리콥터의 잔해 같은

부러진 기억 꿰맞추다가

바람의 메시지 들어요

큰 나무에서 내미는 작은 움의 더듬거리는 손짓

땅속으로 뻗은 뿌리의 발짓과

먹이 나르는 어미 새의 날갯짓

 

우듬지에 새부리 같은 촉 몇 개

바람의 눈썹 건드리고 있어요

오늘 밤엔 갇힌 말들 터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김택희, 《바람의 눈썹, 2017 문학수첩.

 

 


 

김택희 시인

1964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 문창과 졸업. 2009년 《유심》을 통해 등단. 시집 『바람의 눈썹』. 2008년 동서커피문학상 시 부문 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