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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일환 시인 / 김밥을 위한 연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2.

박일환 시인 / 김밥을 위한 연가

 

 

옆구리 터진 김밥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애인은 못생겨도 내 애인이며

내가 품은 사상은 비록 허술해도 내 사상입니다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차마 터질까 봐 말지도 못하면

평생 남의 것만 얻어먹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김밥을 마십시오

나도 정성스레 한 줄의 김밥을 말겠습니다

정성이 부족해 옆구리가 터져나간 김밥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당신에게 드릴 예쁜 김밥을 말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옆구리 터진 김밥을 사랑하겠습니다

못생긴 애인이 깔깔거리고 웃는 모습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시집 <등 뒤의 시간>(반걸음, 2019)

 

 


 

 

박일환 시인 / 먼 나라

 

 

먼 나무 아래 서서

먼 나라를 생각한다

내 나라가 가장 먼 나라였던 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이 만들었다는 선율과

통영 앞바다와

기약 없는 그리움에 대해 말하려면

 

먼 나무 앞에 서봐야 한다

다닥다닥 맺힌 붉은 열매 속으로 들어 가봐야 한다

 

나에게 가는 길이 가장 멀다고 늘 생각해왔지만

먼 나무 한 그루

내 가슴에 옮겨 심지 못했다

 

죽어서야

먼 나무 한 그루로 고향 땅에 뿌리내린

그런 사람도 있다고 중얼거릴 때

 

나라 같은 것 모르는 참새 한 마리

누군가를 부르러 가는지 훌쩍 날아오른다

 

*통영에 있는 윤이상기념관 앞에 먼 나무가 서 있다.

 

 


 

박일환 시인

1961년, 충북 청주시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의 추천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푸른 삼각뿔』 『끊어진 현』, 『덮지 못한 출석부』, 『등 뒤의 시간』과 해설집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용악』이 있음. 구일중학교 교사. 1992. 제4회 전태일문학상 단편소설부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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