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환 시인 / 김밥을 위한 연가
옆구리 터진 김밥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애인은 못생겨도 내 애인이며 내가 품은 사상은 비록 허술해도 내 사상입니다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차마 터질까 봐 말지도 못하면 평생 남의 것만 얻어먹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김밥을 마십시오 나도 정성스레 한 줄의 김밥을 말겠습니다 정성이 부족해 옆구리가 터져나간 김밥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당신에게 드릴 예쁜 김밥을 말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옆구리 터진 김밥을 사랑하겠습니다 못생긴 애인이 깔깔거리고 웃는 모습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시집 <등 뒤의 시간>(반걸음, 2019)
박일환 시인 / 먼 나라
먼 나무 아래 서서 먼 나라를 생각한다 내 나라가 가장 먼 나라였던 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이 만들었다는 선율과 통영 앞바다와 기약 없는 그리움에 대해 말하려면
먼 나무 앞에 서봐야 한다 다닥다닥 맺힌 붉은 열매 속으로 들어 가봐야 한다
나에게 가는 길이 가장 멀다고 늘 생각해왔지만 먼 나무 한 그루 내 가슴에 옮겨 심지 못했다
죽어서야 먼 나무 한 그루로 고향 땅에 뿌리내린 그런 사람도 있다고 중얼거릴 때
나라 같은 것 모르는 참새 한 마리 누군가를 부르러 가는지 훌쩍 날아오른다
*통영에 있는 윤이상기념관 앞에 먼 나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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