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모 시인 / 습작기
비둘기는 목을 흔들며 플랫폼을 분주히 다닌다
기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고 조팝꽃 같은 팝콘은 어디에도 없다
비둘기는 각자 흩어져 플랫폼에 깔린 정처 없는 햇살만 쫀다 사람들이 얼마나 다녔을까 반들반들한 바닥을 구구구, 비둘기는 타자를 치고 있다
온 몸을 흔들며 뱉어내는 소리는 델리만쥬 빵 같은 자음과 모음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 간 긴 의자에 앉아
비행을 접고 팝콘 같은 언어를 찾는 비둘기를 본다
강준모 시인 / 개인택시
푸른 지도가 내장된 택시는 유목민이다 난봉꾼처럼 밀려오는 황사 가자는 대로 군말 없이 달리는 바퀴는 둥글다 지독한 외로움을 위해서 붉은 입술의 그녀가 내려도 욕망은 기억하지 않는다 가끔은 신이문 고가도로 교각의 습한 그늘에서 의자의 각도를 바꾸며 낮잠을 즐긴다 택시는 달려온 거리를 숫자로 기억한다 죽음의 공포를 제거한 숫자들 덜컹거리는 바퀴가 남은 거리를 진단할 뿐 건널목처럼 불쑥 나타나는 태양의 신기루는 유목의 습성이다 달리는 동안 나는 팔뚝에 태양을 문신하고 돈벌이가 괜찮을 때는 사창가 뒷골목을 배회할 것이다 빨간 전구 밑에선 서로의 내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흐린 날에는 백미러로 탑승자의 결핍을 추측하고 뼛속을 달그락거리는 고독을 위해서는 달리는 차창으로 담배 연기를 뱉는다 비가 오면 유쾌한 슬픔을, 눈이 오면 즐거운 우울을 튼다 택시는 음악의 내면을 먹이 삼아 달린다
나는 바람의 지도를 따라 핸들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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