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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춘리 시인 / 구름의 낚싯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2.

김춘리 시인 / 구름의 낚싯밥

 

 

어디쯤 구름이 압축되고 있다

구름을 짜면 비가 나온다

가끔 삐져나온 번개가

땅에 떨어져 풀이 자라기도 한다

 

구름이 깻묵을 개고 있다

따끈함과 끈적거리는 것들을 뭉쳐

동글납작한 떡밥을 만들어

낚시 바늘에 끼운다.

폐곡선이 그어진 하늘, 구름의 어깨 위로

고소한 무늬가 퐁당거리며 구겨진다.

 

깻묵에도 씨가 있다. 굵고 실한 어종들이 입질하는

떡밥, 미끼에 걸려 한쪽으로 치우친 구름떼,

도랑을 콸콸 적시는 비를 뿌리기도 하고

떡밥 떨어진 미늘은 햇살 한줌 걸고 있다.

 

깻묵을 비비면 빗방울이 촉촉하다

시장입구 방앗간에서 깨 볶는 냄새가 고소하다.

이런 날 물고기들 튀고

비가 온다.

 

 


 

 

김춘리 시인 /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들판의 지표면이 자라는 철

 

유목의 봄, 민들레가 피었다

민들레의 다른 말은 유목

들판을 옮겨 다니다 툭, 터진 꽃씨는

허공을 떠돌다 바람 잔잔한 곳에 천막을 친다

아주 가벼운 것들의 이름이 뭉쳐있는 어느 대代

날아오르는 초록을 단단히 잡고 있는 한 채의 게르

꿈이 잠을 다독거린다.

 

떠도는 혈통들은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어느 종족의 소통 방식 같은 천막과 작은 구릉의 여우소리를

데려와 아이를 달래는 밤

끓는 수태차의 온기는 어느 후각을 대접하고 있다.

 

들판의 화로火爐다.

노란 한 철을 천천히 태워 흰 꽃대를 만들고 한 몸에서

몇 개의 계절을 섞을 수 있는 경지

지난 가을 날아간 불씨들이

들판 여기저기에서 살아나고 있다.

 

천막의 종족들은 가끔 빗줄기를 말려 국수를 말아 먹기도 한다.

바닥에 귀 기울이면 땅 속 깊숙이 모래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초원의 목마름이란 자기 소리를 감추는 속성이 있어

깊은 말굽 소리를 받아 낸 자리마다 바람이 귀를 접고 쉰다.

이른 가을 천막을 걷어 어느 허공의 들판으로 날아갈 봄.

 

 


 

김춘리 시인

1952년 강원도 춘천 출생. (본명: 김춘순. 필명: 김지혜) 수원여대 졸업. 사회복지사.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2012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 수혜. 2012년도 천강문학상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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