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솔 시인 / 파도의 레이스
오래전에 당신을 만났을 때에는 열정이 당신을 끌고 가는 듯했지만 오늘 당신은 고요가 가득해 보여요 이제 당신은 홀로 나부끼지 않고 도(道)에 가닿은 흉내를 내지도 않고 풍경 속에 녹아들 줄 아는 여유가 생긴 듯해요 당신에게서 모든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고 모든 풍경이 풀어져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러는 동안 큰 산을 보려고 허리가 다 젖혀졌고 넓은 바다를 품으려 가슴이 다 벌어졌지요 파도의 주름을 느슨하게 잡으며 먼 바다를 향해 낚싯줄을 던지는 사람 낚싯줄에 걸린 것은 물고기도 뭍을 향한 욕심도 아닌 일렁임만으로 충분한 바다의 시간이에요
계간 『문학과 사람』 2020년 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은상 시인 / 목련의 방 (0) | 2022.08.21 |
---|---|
정기만 시인 / 해바라기 외 1편 (0) | 2022.08.21 |
유희봉 시인 / 작은 초가집 주인이 되고 싶어 외 1편 (0) | 2022.08.21 |
김순선 시인 / 봉인된 말 외 1편 (0) | 2022.08.21 |
박준 시인 / 종암동 외 2편 (0) | 2022.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