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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순선 시인 / 봉인된 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1.

김순선 시인 / 봉인된 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거라고

그냥 가슴에 잠자고 있으니

언제든 그려보면 될 거라고

새날이면 주문을 외며 문을 나서는

그 가난한 풋내가 지겨웠을까

 

배우지 않고 부르는 노랫말은

맘부터 부수고 나와 늘 아프다

풋잎에 가슴을 내어 준 한여름 감기는

약의 처방전이 없어 생살이 트는 길 한복판을

오래도록 서성거려 얻은 고립된 언어

 

비밀정원을 꾸려

마르지 않을 그리움을 쪼개 먹으며

갇혀버린 봄의 비린내를 푸름 위에 널어도

봉인된 언어들은 싹이 틀 때마다 시리다

마음의 노동은 표현할 수 없는 길에서…

 

 


 

 

김순선 시인 / 꽃상여

 

 

여명의 휘장이

채 걷히기도 전에

정갈하게 꾸며 놓은

꽃상여가

저리도 일찍 서두는 것은 어인 일일까

 

꽃이 질까 염려되어

서둘러 나서는 길

동구 밖 길가에서 마주쳤다

 

만장 행렬이 즐비한 신작로

침묵의 고요가 주검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세상에 뜯겨 헐거워진 삶이 서러워서

오이씨 버선발로 꽃상여 타고 먼 길 떠난다

 

 


 

김순선 시인

1997년 《21세기 문학》을 통해 등단. 중앙대학교 행정학 박사. 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