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반달 시인 / 직소기행
처음처럼, 갔다. 산은 그랬다. 그늘은 그늘로 비웠다. 그리고 햇볕은 햇볕으로 비웠다. 비우면 고인다 했던가, 사람을 사람으로 비웠을 때 길은 길로 비우기 위해 가파르게 접어들었다. 그러는 내내 비끼는 발치에 꽉 채운 추색(秋色)이 계면쩍어 수풀은 바람의 실눈을 떴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그대는 물의 눈을 떴는가. 그러자 나무들 기연미연 출렁거릴 따름이었다. 그 산길 끝에서 태양은 하늘 호수이고 그 선녀탕이 내변산으로 옴스라니 내려온 것 직소는 산중호수였다. 폭포를 마시고 아스라이 들앉은, 암벽은 하늘처럼 물 비운 채였다. 공(空)에서 공(空)까지 물 비우고 나니 깊은 물 고였다. 그리고 넘치지 않았다.
송반달 시인 / 개울에 관한 그림
구부러진 물의 길에서,
물로 이적한 날개 만나면 억새는 제 송사리만한 가슴 폭에 바람이라는 지느러미 단다.
머리 위와 공중이 그 친밀한 유대를 한 색으로 잇고 송사리 떼는 억새 숲으로 물빛 옮겨다 심기 분주하고 맨몸의 자갈돌들 빽빽하게 몰려다니는 장소에서 자기가 낳은 물길이 비틀거린다 하여 함께 비틀거리다니, 물 추궁하는 물결들 난립으로 소란한 수면 위에
물결 끼얹으며 바람은 불고
그 물의 길에 청둥오리 한 마리
하늘이 운명을 어깨에 달아준 탓으로 끝에서 끝으로 날아다녀야 하는 생 끼얹어 오는 바람 앞에 잠시 날개 접어서 널어두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날지 못하는 주변의 억새들 마중가다 재껴 부는 바람에 발 헛디뎌 물결에 실려 가는 햇살이 석양의 손으로
물에 불 지르다. 세상이라는 액자 안에
그런 삶 한 컷.
송반달 시인 / 징검다리
그러나, 뼛속까지 짊어진 색깔이 무거웠을 거다. 쉽사리 색깔 드러내지 말라고 뜬 무지개는, 결국 색깔 있는 것은 추락하기 십상이라고 뜬 무지개는 추락한 거다. 진하게 아주 진하게 너에게 혹은 그들에게 색깔 펼친 잘못으로 추락한 무지개는, 강의 발등과 저 편 강의 발등에 그 탈진한 몸 부리고 자기 투켜세우느라 수고한 색깔들에게 꼬리 흔들며 썩어간다. 썩는 색깔에게선 발등 찍는 냄새가 나고, 제 뼈를 유물로 남기고 싶은 것들은, 반드시 피 냄새 풍기며 그 힘으로 썩고 그 힘으로 육탈한다. 그렇게 골로 간다. 이제, 어느 무지개의 그 증거를 마디마디 밟으며 건너가는 거다. 안행 지어서 가는 거다. 내 일곱 똘기들-희-로-애-락-애-오-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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