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 시인 / 블루스크린
우리의 대화는 유빙처럼 흘러내려 눈물이 된 남극의 꿈이라도 꾼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언어가 허공을 맴돌아
닫힌 듯 열려 있는 격자무늬 창문 밖 어디론가 흘러가는 뜬구름만 무성해
파랗게 질린 표정 속, 감춰진 이야기들
정지된 시계바늘만 바라보다 잠든 새벽 깜깜하게 잠겨버린 눈 코 입을 더듬는다
불안한 혀끝에 감긴 소리를 지운다
이송희 시인 / 컵
네 속이 환히 보여 견딜 수 없었다고
탁자 위 어슷하게 오후가 저물자
모조리 빈말뿐이던 그의 말도 비운다
네 몸에 나를 맞추며 나를 쏟아붓던 날
내 몸의 향기에 취해 그는 나를 비웠다
네 삶의 각본에 갇힌 내 꿈은 출렁였다
사라진 내 목소리 찾을 길이 없었다
비워진 허공마다 입술의 흔적들이
방 안에 쪼그려 앉은 혼잣말을 삼킨다
-이송희, [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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