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연 시인 / 여름의 힌트와 거위들
거위들과 누워서 책을 읽었다 사실은 건축가가 아니라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은 시인이 아니라 화가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였고 사실은 소설가가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였다
다 같은 거 아닌가? 퐁퐁이 없으면 거위들은 샴푸로 설거지를 한다
그 날은 약속한 날이었다 높은 빌딩 근사한 곳에서 밥을 먹는데 거위 하나가 일찍 와 있었다 여기 청소일 알아 봤어 작은 쪽지를 가방에 접어 넣었다
이건 오크라, 이건 샬롯, 오! 산초와 루바브 그릇은 비행접시처럼 커다랗고 우리는 둥둥 모르는 것들만 집어 먹었다
거위들과 나란히 책을 읽을 때 거지의 개와 과부의 고양이 그런 건 우화였다
행복한 손님이 많은 곳에서는 청소 하지마 차라리 종합병원은 어때?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부끄러웠고
나와 거위들의 부끄러움은 달라서 함께 책을 읽었다
아무도 부탁한 적 없어서 계속할 수 있었다
계간 『POSITION』 2021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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