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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오주리 시인 / 카라, 눈물에 피어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2.

오주리 시인 / 카라, 눈물에 피어난

 

 

 실패한 자살기도는 자해(自害)가 된다 시를 씀은 끝없는 자해, 불가능을 살고 있다 믿을 것은 고통뿐, 잠들어 흘린 눈물에 모든 힘 잃은, 내 안의 시인이여, 그 눈물에서 카라 피어난다 허무(虛無)의 심연에서 나의 숨이 멎길 꿈꾼다 무의미한 시간의 연명, 왜 고귀한 시신은 부패하지 않는가 눈물의 존재론적 성분은 무언가 고통마저 향기로워지는가 날개 잃은 카라의 꽃대는 내 영혼의 부름 듣지 못하니

 

 


 

 

오주리 시인 / 장례미사

 

 

세상 끝 바다의 제단

나의 임종을 맡길 당신

 

 

태풍이 소멸하는 바다 한가운데,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의 제단에서

유리관 속 흰 장미를 덮고 잠든 여인의 입술에 비로소 검붉은 피 멎는다

흩뿌려지며 빛나는 성수(聖水), 그녀의 젖은 속눈썹 떨리게 하여

인당(印堂)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에서 날개 펴는 천사의 시

 

천상으로부터 내려와 눈물로 시를 쓰다 천상으로 돌아간 시인을 기억하기 위하여

 

사제(司祭)는 다시 부활초를 밝힌다

 

새는 신으로부터 하늘과 바다를 모두 선물 받았다

눈물이란 거울에 하늘의 은테 그려 보인다

 

인간이라는 신과 신이라는 인간에 서로 상처받은

멸망의 숲은 태풍 지나 검붉은 포말 꺼지니 다시 은빛 한 줄기 시간 흐른다

예언자는 기다리라, 기다리라, 그 기다림이 천국이라,

텅 비어 아름다운 순수를 천사로 하여금 하프로 연주케 한다.

 

태풍이 소멸하는 바다 한가운데,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의 제단에서

유리관 속 흰 장미를 덮고 잠든 여인의 입술이 마지막 고해(告解)를 머금고 있다

십자로 빛나는 성유(聖油), 그녀의 젖은 속눈썹 떨구게 하여

비극의 생으로만 벼려질 성상(聖像)의 얼굴, 그 천사의 미소

 

- 월간 《현대시 2021년 10월호, 「신작특집」에서 -

 

 


 

오주리(吳周利) 시인

1975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 박사. 2010년 《문학사상》에 〈나의 장미창〉외 6편으로 등단. 제40회 대학문학상 수상.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시집 <장미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