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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정원 시인(이천) / 숨는 노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3.

이정원 시인(이천) / 숨는 노래

 

 

병풍 뒤에 숨었죠 당신이 보이지 않는 곳 당신에겐 내가 보이지 않는 곳

 

황금연못에서 건져온 기억을 숨겨놓고 숨죽여 뒷면에 누우면 되나요

 

여러 폭으로 접히면 내 발은 어디에 있나요 머리카락은 어느 곳으로 날리나요

 

미처 건져오지 못한 것들이 수면에 떠도는데 불쑥 찾아든 생각

 

끼워 넣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든지 발가락을 오므리든지

 

병풍은 참 암담한 벽이군요

 

실마리를 찾아 데려오면 접히는 곳마다 비명의 세로줄 물풀처럼 흔들릴 텐데

 

호흡을 가다듬고 수면을 퉁기는 소금쟁이처럼 맴돌면

 

저녁은 왜 물컹한가요 어둑어둑 내 목소리를 덮어두나요

 

왠지 먹먹해서

 

얼룩진 곰팡이꽃술 속 나는 자꾸 숨죽이는데

 

 


 

 

이정원 시인(이천) / 묘생(猫生)에 관한 질문

 

 

웅크린 물음이 웅얼웅얼 발톱처럼 자란다

 

밤을 굴리는 나의 간지(干支)는 묘생

담즙의 시간, 묘하게 궁금한 게 많아 늘 등을 구부린다

 

야생의 전력을 무기삼아 무어든 긁고 싶지만 일단 꼬리를 말고 기다린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물음표를 베고 이슥하게 눕는다

 

얼핏 뛰어넘었던 어제의 담은 높은 궁지, 어엿해 보이려는 객기로 착지의 순간에도 별 속으로 달아나 숨고 싶다

 

새끼들의 얼룩이 어미 명치의 굴곡을 닮아 뒹구는 술병이나 깨진 화분조각에 마음 베이는 날 잦다

 

다리 접질리는 날이라야 실컷 울어 허공을 찢어본다 허공은 밤에도 파랗게 날이 선다

 

배회하며 궁리가 길다 뾰족한 울음의 발자국 깊이 파이면 동동거리는 발목에 누가 방울을 달러 올까

 

한밤을 꺼내다 겨드랑이가 젖어

태생(胎生)의 습성으로 눅눅한 질문을 별에게로 던져보는

 

그렁그렁

웅크린 발톱이 물음을 키운다

 

 


 

이정원 시인(이천)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 인천교육대학 졸업. 2002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2005년 계간 《시작》으로 등단. 2009년 문예진흥기금과 경기도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으로 『내 영혼 21그램』(천년의시작, 2009), 과 『꽃의 복화술』(천년의시작, 2014)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