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헌 시인 / 심장을 가졌다
양파를 썰다가 왼손 중지 첫째 마디를 베었다 둑이라도 무너진 듯 솟구치는 통증 아래 붉은 아가미가 입 벌리고 있다 어떤 힘으로 마그마가 틈을 찾아냈는지 이미 굳어버린 고집을 흔들어 따뜻하게 대지를 적시는 붉은 소낙비 심장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눈물 흘리는 것으로는 너의 반의반도 적시지 못한다는 듯 신은 어느 날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여 버려진 어둠을 헤치고 담장 안에 장미를 심으라 명령을 내렸다 꽃과 가시를 내장한 채 줄줄이 담장을 넘어 가문의 명예를 걸고 전장에 나가는 붉은 군사들에게 신은 또 명령한다 꽃이라는 문장으로 세상을 제압해보라 생이라는 협곡을 통과하기 위해선 가시에 찔리고 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 소낙비가 그치고 붉은 아가미가 닫히고 넝쿨장미는 줄줄이 담장을 넘으며 너머의 세상을 향해 온몸을 발기하고 있다
김지헌 시인 / 뜨거운 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 쯤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았다 붉은 홍시 같은 달이 야트막한 언덕을 비추며 조금만 더 가보라고 한다
전력질주 하는 손흥민을 보며 발이 축구공보다 빠를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인간이 갖고 있는 206개의 뼈 간절한 기도와 이야기가 새겨진 신전의 기둥
지금 서있는 곳이 그의 일생의 결론이다 가장 처절하게 달려 도달한 그 곳 무수한 발이 뒤 따르고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히고 종착에 도달 할 때 까지 때로는 접질려 절뚝거릴 때도, 연골이 닳아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고통에 찬 뼈들을 오래오래 달래가며 한 밤의 환호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80여년을 달려온 어머니의 발도 우리 집안의 전력질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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