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홍 시인 / 수궁가
깊은 동굴 속 슬픈 짐승 한 마리 살고 있다. 때때로 그 짐승은 아무도 모르게 울음을 쏟아내었는데, 붉은 소리 속에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도 섞여 있다. 평생 동굴속에만 갇혀 산 짐승은 한 번 울면 좀체 그치지 않았다. 우는 것인지, 괴성을 내는 것인지 소리는 나날이 깊어지고, 굵어졌다. 누군가 추임새를 넣는 듯 얼씨구, 소리도 들렸다. 때때로 박쥐들의 날개 소리와 피 냄새가 그 소리에 섞여 하얀색으로 변하였다. 지상의 나무들과 꽃들은 소리의 높낮이를 따라 흔들리거나, 피고 지고 다시 묻혔다. 짐승이 우는 날, 빗소리 같은 북소리도 두, 두, 둥 우렸다 간간이 폭우가 쏟 아지고, 폭포로 변한 소리는 슬픈 소리는 물줄기를 뚫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달빛으로 변한 온 세상에 빛을 뿌렸다. 사람들이 잠든 마을에도 날아가고, 잠들지 못한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었다. 귀신의 울음 같기도 하고,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하고 죽음의 소리 같기도한,
누구도 그 슬픈 짐승을 보지 못했다.
정연홍 시인 / 신기료장수 길을 꿰매다
시내버스 정거장 한 켠 신기료장수 앉은뱅이 의자 위에 하루의 굽은 등 묶어 두고 상처 난 신발들 꿰매고 있다 때 절은 공구통 연장들이 살아온 날들의 흔적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다 바늘을 뽑아 올리는 부지런한 손길에서 길들의 아픈 부위가 하나씩 아물어 간다 사십년 고단한 얼룩의 날들, 그의 손을 거쳐 다시 새 길을 얻은 수많은 사람들의 길 튼튼하게 박음질 된 그 길을 따라간
하동 구례 광양 5일장을 따라 평생을 떠돌았을 낡은 구두 누구도 꿰매 주지 않던 그의 상처 난 길들이 이제는 시장 뒷켠으로 밀려나 있다 간간이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만이 소문처럼 찾아 주는 이곳 더 이상 꿰맬 길 없는 누더기 인생들이 서성거리는 오일 장터 아직도 그를 기다리는 구멍 난 길들이 수군거리고 있다
2005년 <시와시학>신춘문예 당선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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