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시인(시조) / 달빛 호수
둥둥 뜬 마음 몇 채 젖은 몸을 말린다 부표처럼 배를 타고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용지호 한복판에서 달그림자 그린다
찬란한 순간의 꽃 앵글에 잡힌 초점 세상의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으리라 렌즈를 당겨보지만 사라지는 별 하나
바람이 짚어주는 음계를 두드리며 난간 위 걸터앉아 소리를 내는 남자 또 하루 잠을 청하는 노숙인의 밤이 깊다
김진희 시인(시조) / 의자
이제는 네게 맘껏 자유를 주고싶다 뜯어낸 실밥으로 고봉밥상 차리던 어머니 빈자리에는 제 냄새가 베어 있다
마음도 문패인 양 지워진 빈집에는 육 남매 학비 걱정 밤새우던 의자가 깡마른 그림자 끌고 뚜벅뚜벅 걸어온다
재봉틀 앞 창가에도 철없이 봄은 와서 바람 따라 괴발개발 꽃 피운 개발 선인장 의자 위 올려놓은 분 푸른 잎을 키운다
김진희 시인(시조) / 그늘의 의미
그늘을 키운 숲은 품 넓은 엄마 같다 어린잎 등에 업고 계절을 넘어 가는 등 굽은 잎파랑이도 애벌레를 품고 있다
꽃이 핀 자리에는 바람의 등이 있다 솔기 터진 그리움이 맨살로 타오르는 초여름 저녁의 허기 등꽃불이 환하다
그늘이 된다는 건 등이 되어 주는 것 굴풋한 생각들을 품은 숲이 되는 것 매미는 나무 등에 안겨 끝 모를 울음 운다
김진희 시인(시조) / 딱 하루만
딱 하루 한나절만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 미루다 못 차린 밥상 눈물 섞인 밥 짓겠네 군 갈치 된장 보글 끓여서 꽃상 한번 차리겠네
내 고향 집, 다 삭은 몸 모락모락 만져 주면 주름살 고랑마다 배인 근심 다 씻기겠네 아, 그때 철없이 대든 것 무릎 꿇고 빌겠네
하루 중 반나절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 내 품에 잠들 때까지 재잘재잘 말하겠네 못다 한 사랑의 말도 아낌없이 하겠네
김진희 시인(시조) /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강을 건너자
일어나라 형제들아 깨어나라 누이여 생명과 평화 가득한 의지의 푸른 혼이여 벼랑 끝 소나무처럼 꿋꿋하게 버틴 우리들
힘들 때 하나 되어 꽃 피운 금모으기운동 기름띠를 닦으러 달려간 태안 앞바다 생업을 뒷전에 두고 대구로 간 의사들
더 필요한 사람 위해 마스크를 양보하고 어려울 때 빛을 발하는 품격으로 사재기 없이 한 번도 비겁한 적 없는 아! 대한의 피여
장막에 갇힌 이 강을 하나 되어 건너자 움츠린 가슴 펴라 두 주먹 불끈 쥐고 머잖아 내리쬐는 태양을 흠뻑 마시자, 실컷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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