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술 시인 / 개숭어
진해 군항제 벚꽃소식 들려올 때쯤이면 잊지 않고 어김없이 대항 앞바다를 찾아오는 개숭어는 참말로 점잖은 생물입니더
망루에 올라 고기떼를 쫓을 때면 그 수많은 은빛 비늘들 속 어딘가에 반드시 우두머리 한놈이 있어 아직 눈도 못뜬 봄숭어임에도 불구하고 말도 못하게 민첩히 고기떼를 이끕니더
그 먼 눈으로도 우리보다 더 정확히 해류와 암초 수초들을 훤히 꿰뚫어 제 안방처럼 요리조리 움직이는 걸 보면 저것들이 필시 하찬은 물고기가 아니라 무슨 신령한 것이 아닌가 싶지예
그 우두머리 쫓는 법을 제 할아버지가 터득해 아버지 대를 거쳐 지금은 제가 조업을 하지만 하고 많은 어종들 다 제쳐놓고도 숭어만은 어쩐지 함부로 다뤄지지가 않습니더
용원 공판장에 미처 못나가 수조에서 하룻밤 묵을라치면 눈에 띄게 살이 내리고 비늘이 상하는 것을 보면서 바다를 떠나서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섬사람들의 운명이 숭어와 뭐 다르겠나 싶기도 한데
뱃놈들 섬놈들 캐쌌는 소리 무신 소린지 왜 모를까마는 숭어에게도 숭어의 생리가 있듯이 섬놈에게도 섬놈의 순리가 있십니더
보상받고 어디 대처에 나가 그래도 한목숨 살기는 살아야겠다 싶다가도 육수장망 끌고 나서는 숭어철이 오면 우째 사노 우째 살겠노 싶어 요즘 잡히는 숭어떼 그 미끈한 몸피만 보면 마, 마음이 제 마음이 아닌게 솔직한 심정입니더
무슨무슨 개량망이 날고 기는데 무신 똥고집으로 육수장망만 고집하느냐꼬요 누가 뭐라케도 숭어잡이엔 육수장망 만한 게 없다는 걸 섬사람 아니면 누가 알겠십니꺼
세월이 하마 좋아도 버리지 못하는 건 어디에나 다 있지예
김형술 시인 / 누가 저 바람을 막으랴
득구씨 새벽 댓바람부터 맨발로 선창가를 달린다. 새벽잠 없는 마을 개들 신이나서 뒤따르고 정거 물굽이 넘어오는 마파람이 뒤따르고 목노든 득구씨 안사람 분기탱천이 뒤쫓아 달린다. 마파람은 숭어떼 몰아오고 샛바람은 병어떼 불러오는데 정수리 반백이 되어도 기세가 안 꺾이는 저 인간 바람기는 내 가슴에 평생 화근이다.
한 물 지나면 두 물 오고 조금 지나 사리 오듯이 이제나 사람될까 저제나 인간될까 참고 살고 속고 산 세월 손꼽아보니 평생이라. 인자는 몬 참는다. 하루이틀이라 내 참겠나. 게 안 서나. 이 화상아, 니 죽고 내 죽어 결판을 내자. 엊저녁 해거름 틈타 일찌감치 주낙치고 돌아와 안사람 잠든 사이 두 손에 백구도 쥐고 소리없이 선외기 몰아 용원 꽃다방 마실갔던 득구씨.
새벽같이 돌아와 우의 장화 갈아입기도 전에 안사람에게 걸렸다. 주낙에 뱀장어 걸리듯 빼도 박도 못한다. 허리띠 뺏긴 바지춤 연신 추켜올리며 새벽 조업 마치고 포구에 쉬는 배들 위를 이리 건너고 저리 뛰는 득구씨 품새가 영락없는 봄날 망둥이다. 저 늠의 여편네 성깔을 샛진 날 나불인들 당할소냐. 친손주 외손주 다 본 마당에 이기 무슨 넘새란 말고.
깨고나면 뱃전이고 밥숟갈 놓으면 나불밭이라 한 평생 뱃놈으로 산 내 호사래야 잠시 잠깐 곁몸질인데 불가사리 조개 삼키듯, 낙지가 꼬시래기 삼키듯, 알아도 모른 척 눈 한 번 질끈 감아주면 만사가 태평일 것을. 지 성질 지가 못이겨 저리 방방 날뛰어 싸니 니가 무슨 봄날 앙살게가 시월 꽃게가. 득구씨 바위같은 등짝에 기어이 목노자국 서너 줄 얻은 후에 안사람에 허리춤 잡혀 끌려간다.
포마드 발라 넘긴 머리 산발된 채 곤두서고 엉덩이 뒤로 쭈욱 빼고 질질질질 복날 개처럼 끌려간다. 온동네 개들 다모여 꼬리치며 따라가고 입막고 웃는 동네 여자들 얼굴에 개버짐꽃 스멀스멀 번진다. 된바람은 어장 걷어 막고 놉바람은 배 끌어올려 막는다지만 가덕도 제일가는 천하 난몽 황득구씨. 저 바람을 누가 막으랴. 난바다가 큰 물굽이가 막으랴. 먼 바다 섬만한 고래떼가 막으랴. 어림도 없다. 어림도 없어. 내 손에 장을 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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