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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진희 시인(시조) / 달빛 호수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1.

김진희 시인(시조) / 달빛 호수

 

 

둥둥 뜬 마음 몇 채 젖은 몸을 말린다

부표처럼 배를 타고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용지호 한복판에서

달그림자 그린다

 

찬란한 순간의 꽃 앵글에 잡힌 초점

세상의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으리라

렌즈를 당겨보지만

사라지는 별 하나

 

바람이 짚어주는 음계를 두드리며

난간 위 걸터앉아 소리를 내는 남자

또 하루 잠을 청하는

노숙인의 밤이 깊다

 

 


 

 

김진희 시인(시조) / 의자

 

 

이제는 네게 맘껏 자유를 주고싶다

뜯어낸 실밥으로 고봉밥상 차리던

어머니 빈자리에는 제 냄새가 베어 있다

 

마음도 문패인 양 지워진 빈집에는

육 남매 학비 걱정 밤새우던 의자가

깡마른 그림자 끌고 뚜벅뚜벅 걸어온다

 

재봉틀 앞 창가에도 철없이 봄은 와서 바람 따라 괴발개발 꽃 피운 개발 선인장

의자 위 올려놓은 분 푸른 잎을 키운다

 

 


 

 

김진희 시인(시조) / 그늘의 의미

 

 

그늘을 키운 숲은 품 넓은 엄마 같다

어린잎 등에 업고 계절을 넘어 가는

등 굽은 잎파랑이도 애벌레를 품고 있다

 

꽃이 핀 자리에는 바람의 등이 있다

솔기 터진 그리움이 맨살로 타오르는

초여름 저녁의 허기 등꽃불이 환하다

 

그늘이 된다는 건 등이 되어 주는 것

굴풋한 생각들을 품은 숲이 되는 것

매미는 나무 등에 안겨 끝 모를 울음 운다

 

 


 

 

김진희 시인(시조) / 딱 하루만

 

 

딱 하루 한나절만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

미루다 못 차린 밥상 눈물 섞인 밥 짓겠네

군 갈치 된장 보글 끓여서 꽃상 한번 차리겠네

 

내 고향 집, 다 삭은 몸 모락모락 만져 주면

주름살 고랑마다 배인 근심 다 씻기겠네

아, 그때

철없이 대든 것

무릎 꿇고 빌겠네

 

하루 중 반나절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

내 품에 잠들 때까지 재잘재잘 말하겠네

못다 한 사랑의 말도 아낌없이 하겠네

 

 


 

 

김진희 시인(시조) /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강을 건너자

 

 

일어나라 형제들아

깨어나라 누이여

생명과 평화 가득한 의지의 푸른 혼이여

벼랑 끝 소나무처럼 꿋꿋하게 버틴 우리들

 

힘들 때 하나 되어 꽃 피운 금모으기운동

기름띠를 닦으러 달려간 태안 앞바다

생업을 뒷전에 두고 대구로 간 의사들

 

더 필요한 사람 위해 마스크를 양보하고

어려울 때 빛을 발하는 품격으로 사재기 없이

한 번도 비겁한 적 없는

아! 대한의 피여

 

장막에 갇힌 이 강을 하나 되어 건너자

움츠린 가슴 펴라 두 주먹 불끈 쥐고

머잖아 내리쬐는 태양을 흠뻑 마시자, 실컷 웃자.

 

 


 

김진희 시인(시조)

1957년 경상남도 진해 출생. 1997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문학> 등단. 시집 <내마음의 낙관>. 시선집 <슬픔의 안쪽>. <바람의 부족部族>. 경남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수상. 밀양 예림초등학교 교장, 현재 경남문협 사무차장과 경남여류문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