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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현숙 시인(동시) / 터진다 외 1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5.

<제8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

김현숙 시인(동시) / 터진다

 

 

개나리 꽃망울

터진다

감나무에 새잎

터진다

개구리 입

터진다

놀이동산에 팝콘

터진다

아이들 웃음

터진다

 

남에서

북으로

봄, 봄, 봄

터진다

 

 


 

 

김현숙 시인(동시) / 축구공

 

 

뻥뻥 차이면서

미리 구르고

저리 달리고

구십 분을

쫓겨다녔지만

난 빵빵하다고요

 

어디

한두 시간쯤

더 해 보실래요?

누가 먼저

털썩 주저앉는지

한번 해 보실래요?

 

 


 

 

김현숙 시인(동시) / 문제 풀기

 

 

여름 한낮

도서관에서

수학 문제 푼다고

나는 몇 시간째

끙끙거리는데

 

잠시 내린

소나기는

나무들의 목마름을

한 번에 풀어 버린다

 

 


 

 

김현숙 시인(동시) / 귤 맛

 

 

귤 하나를

한 조각씩

나눠 먹고는

 

할머니는 시다

엄마는 달다

아빠는 시원하다

 

조각마다

다른 맛 숨겨 둔

귤!

 

 


 

 

김현숙 시인(동시) / 어려운 숙제

 

 

학교에 학생 수 점점 줄어든다고

 

시훈이, 도현이, 요한이, 상대

정인이, 주은이, 윤지, 지수, 나

 

한 자녀뿐인 우리 불러 놓고

선생님은 특별한 숙제를 내주셨다

 

엄마한테 동생 낳아 준다는 확답 받아 오기!

 

그런데 숙제 해 온 친구

한 명도 없다

 

 


 

 

김현숙 시인(동시) / 병원 앞 연못

 

 

할아버지 입원하신 노인 병원 앞

작은 연못 하나 있는데요

 

그 연못은

직장 다니느라고 부모님을 돌보지 못한

아들 딸들의 눈물이 고여서 된 연못이래요

 

정말인지는 모르지만

어버이날 저녁에

할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다가

눈물 그렁그렁한 연못을 보았습니다

 

 


 

 

김현숙 시인(동시) / 강

 

 

뱃속으로

쓰레기가

들어오자

 

강이

쓰레기를

소화시키려

꿈틀꿈틀

캔, 유리병, 플라스틱......

소화가 안 돼

울컥울컥

강가로 토해 낸다

 

 


 

 

김현숙 시인(동시) / 내비게이션

 

 

꽃구경 다녀오다가

엄마랑 아빠랑 싸웠다

 

차 안이 조용해졌다

 

나도 말 못하고

동생도 말 못하고

 

내비게이션 혼자 떠든다

 

- 우회전하세요

- 유턴하세요

- 속도를 줄이세요

 

 


 

 

김현숙 시인(동시) / 고드름

 

 

지붕 타고

내려오던 물방울

 

처마 끝에서

뛰어내리지 못하고

달, 달, 달,

 

뒤따라오던

물방울도

달, 달, 달.

 

처마 끝에

얼음 수염

 

 


 

 

김현숙 시인(동시) / 과일나무가 부른다

 

 

알밤이 떨어진다고

대추가 나무에서 마른다고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오면

 

서울 고모

마산 큰아버지

대구에 사는 우리

상주 할머니 집에 다 모인다

 

할머니 죽고 나면

고향 찾을 일 없을 거라고

집 뒷산에 과일나무를

심어 놓은 할머니

 

오늘은

홍시가 제 맛이라고

또 전화를 하셨다

 

 


 

 

김현숙 시인(동시) / 종률이 아저씨

 

 

고춧대야, 미안하다

너 쓰러질까 봐

막대도 세우고

끈으로 묶어 두었는데

간밤 세찬 바람에

목이 다 부러졌구나

어쩐다니?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잠만 쿨쿨 잤으니......

얼마나 아팠겠니?

 

우리 마을

종률이 아저씨

고춧대 어루만지며

했던 말

하고 또 해요

 

 


 

 

김현숙 시인(동시) / 군불

 

 

찬바람 부는 가을날

햇살은 종일토록

군불을 땠다

 

아궁이가 아닌

너럭바위에

 

따끈하게 데워진 바위에

다람쥐 한 마리

졸고 있다

 

너럭바위 앞에

몸을 녹이려

가랑잎들 모여든다

 

 


 

 

김현숙 시인(동시) / 봄비

 

 

비에 젖은

길고양이 한 마리

 

골목을 어슬렁거린다

 

밥 챙겨주던 사람들

다 어디로 갔을까?

 

시무룩한 도시

 

토닥토닥

봄비가

달래준다

 

 


 

김현숙 시인(동시)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남.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2005년 <아동문예> 신인상 수상, 2010년 제8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 상'을 수상. 2013년 눈높이아동문학상 당선. 동시집 『특별한 숙제』. 『아기 새를 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