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 김현숙 시인(동시) / 터진다
개나리 꽃망울 터진다 감나무에 새잎 터진다 개구리 입 터진다 놀이동산에 팝콘 터진다 아이들 웃음 터진다
남에서 북으로 봄, 봄, 봄 터진다
김현숙 시인(동시) / 축구공
뻥뻥 차이면서 미리 구르고 저리 달리고 구십 분을 쫓겨다녔지만 난 빵빵하다고요
어디 한두 시간쯤 더 해 보실래요? 누가 먼저 털썩 주저앉는지 한번 해 보실래요?
김현숙 시인(동시) / 문제 풀기
여름 한낮 도서관에서 수학 문제 푼다고 나는 몇 시간째 끙끙거리는데
잠시 내린 소나기는 나무들의 목마름을 한 번에 풀어 버린다
김현숙 시인(동시) / 귤 맛
귤 하나를 한 조각씩 나눠 먹고는
할머니는 시다 엄마는 달다 아빠는 시원하다
조각마다 다른 맛 숨겨 둔 귤!
김현숙 시인(동시) / 어려운 숙제
학교에 학생 수 점점 줄어든다고
시훈이, 도현이, 요한이, 상대 정인이, 주은이, 윤지, 지수, 나
한 자녀뿐인 우리 불러 놓고 선생님은 특별한 숙제를 내주셨다
엄마한테 동생 낳아 준다는 확답 받아 오기!
그런데 숙제 해 온 친구 한 명도 없다
김현숙 시인(동시) / 병원 앞 연못
할아버지 입원하신 노인 병원 앞 작은 연못 하나 있는데요
그 연못은 직장 다니느라고 부모님을 돌보지 못한 아들 딸들의 눈물이 고여서 된 연못이래요
정말인지는 모르지만 어버이날 저녁에 할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다가 눈물 그렁그렁한 연못을 보았습니다
김현숙 시인(동시) / 강
뱃속으로 쓰레기가 들어오자
강이 쓰레기를 소화시키려 꿈틀꿈틀 캔, 유리병, 플라스틱...... 소화가 안 돼 울컥울컥 강가로 토해 낸다
김현숙 시인(동시) / 내비게이션
꽃구경 다녀오다가 엄마랑 아빠랑 싸웠다
차 안이 조용해졌다
나도 말 못하고 동생도 말 못하고
내비게이션 혼자 떠든다
- 우회전하세요 - 유턴하세요 - 속도를 줄이세요
김현숙 시인(동시) / 고드름
지붕 타고 내려오던 물방울
처마 끝에서 뛰어내리지 못하고 달, 달, 달,
뒤따라오던 물방울도 달, 달, 달.
처마 끝에 얼음 수염 점 점 길 어 진 다
김현숙 시인(동시) / 과일나무가 부른다
알밤이 떨어진다고 대추가 나무에서 마른다고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오면
서울 고모 마산 큰아버지 대구에 사는 우리 상주 할머니 집에 다 모인다
할머니 죽고 나면 고향 찾을 일 없을 거라고 집 뒷산에 과일나무를 심어 놓은 할머니
오늘은 홍시가 제 맛이라고 또 전화를 하셨다
김현숙 시인(동시) / 종률이 아저씨
고춧대야, 미안하다 너 쓰러질까 봐 막대도 세우고 끈으로 묶어 두었는데 간밤 세찬 바람에 목이 다 부러졌구나 어쩐다니?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잠만 쿨쿨 잤으니...... 얼마나 아팠겠니?
우리 마을 종률이 아저씨 고춧대 어루만지며 했던 말 하고 또 해요
김현숙 시인(동시) / 군불
찬바람 부는 가을날 햇살은 종일토록 군불을 땠다
아궁이가 아닌 너럭바위에
따끈하게 데워진 바위에 다람쥐 한 마리 졸고 있다
너럭바위 앞에 몸을 녹이려 가랑잎들 모여든다
김현숙 시인(동시) / 봄비
비에 젖은 길고양이 한 마리
골목을 어슬렁거린다
밥 챙겨주던 사람들 다 어디로 갔을까?
시무룩한 도시
토닥토닥 봄비가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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