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시인(상주) / 가로등
강둑 외진 길에 밤마다 푸른 빛 한 송이 꽃 핀다
재재거리는 많은 풀꽃들 머리 위에서 그들 어둠을 쫒아내는 조용한 손사래
길이 머뭇거리지 않고 멀리까지 힘껏 달려가도록 달빛으로 떠 있다
-김현숙 시인의 시집 "아들의 바다"
김현숙 시인(상주) / 큰나무
작은 새들과 함께 돌아온다 오월에는 머리에 구름을 앉히고 휘어지고 굽이치며 흐른다 비바람을 치켜 올리며 꺾으며 한 뜸씩 허공을 짚어간 손가락마다 푸른 하늘이 느긋이 들어앉는다 스치며 잊은 것 버린 것까지도 갔던 길 되돌아온다 와선 가만히 안긴다 어느 대목 빠짐없이 새눈 뜬다 꽃으로 꽃으로 잎으로 잎으로
김현숙 시인(상주) / 풀꽃으로 우리 흔들릴지라도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바로 가누기 힘들지라도 햇빛과 바람 이 세상맛을 온몸에 듬뿍 묻히고 살기는 저 거목과 마찬가지 아니랴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낮은 몸끼리 어울릴지라도 기쁨과 슬픔 이 세상 이치를 온 가슴에 골고루 적시며 살기는 저 우뚝한 산과 무엇이 다르랴
이 우주에 한 점 지워질 듯 지워질 듯 찍혀있다 해도
김현숙 시인(상주) / 탄도에서 누에섬까지
바람 줄서서 기다리는 곳 바다가 가슴을 쫘악 쪼개어 밑바닥까지 보여줄 때면 눈 반짝이는 말 하나 오래전 건너갈 사랑이었는데
설령 건너갔더라도 먼 길 너 혼자 걸어갈 때 몹시 무거웠을 지상의 말은 닳아, 이제 가벼운 노래 나 혼자 부르며 간다
저 작은 누에섬이 지금도 먹지 않고 잠도 없이 파도소리로 비단緋緞집을 짓는지 그때 생각하면서 나, 가끔 푸르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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