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시인 / 슬럼
연약한 하늘색을 어슬렁대본 적이 있다 무결한 사람에 들어 있는 사람을 구출할 수 없다 옥수수와 참치 옥수수와 참치 통조림을 먹으며 구덩이를 파고 싶은 기분이 든다 슬럼프 안에 담겨 있으면 포근하다 삐뚤빼뚤 열린 하늘을 본다 부피를 본다 색을 본다 경계를 본다 무결을 본다 연 대로 열린 대로 보이는 걸 보고 있다 올려다보는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을 구태여 하지 않는다 보다가 본다 운명을 믿는 사람을 보고 있다 시간이 불타는 걸 보고 있다 포로들은 멈춘 버스에서 단잠 중이다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 시집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중에서.
이영재 시인 / 코끼리
곡해되었다 해도 공간은 사방을 구기지 않는다 상상될 필요조차 없이, 나는 코끼리의 한계다 나를 그리워하는 코끼리의 눈이 검어서 때가 되면 검정을 풀어둔다 코끼리가 담장을 들이받을 수 있는 건 담장이 있기 때문이다 없다면 들이받을 수 없다 검정이 코끼리를 감싸고 코끼리는 아파도 울지 않는 눈을 가졌다 대추나무의 뿌리로 이루어진 코끼리는 송아지의 골똘함으로 이루어졌다 플라타너스의 잎사귀로 이루어진 코끼리의 혀는 교활한 작위다 독백하는 코끼리가 직립을 통해 쥐의 꼬리를 친구 삼고 (쥐의 몸통과 대가리는 검정이 물어뜯어 부패된 상태다) 코끼리가 늑대로 울고 때가 되면 코끼리는 코끼리인 듯하다 경우에 따라 코끼리는 스스로 코끼리의 한계다 꽃을 마시고 쥐구멍의 어둠을 질투하고 코끼리는 아비와 어미를 나의 어미와 아비로 가져서 기쁨을 무표정으로 무표정을 지붕 위의 권태로 베낀다 살구꽃을 틔우며 코끼리는 화를 간지럽히고 슬픔을 반추한다 늙은 소로 이루어진 어금니 때문에 반추로 자위하고 위해하는 살구꽃을 먹는다 코끼리의 한계가 나라고 해서 나는 코끼리와 작위가 아니다 작위는 코끼리가 사방을 가로지르게 하고 인내하게 하고 욕망의 한계 앞에서 들소처럼 한계를 들이받다가 사방을 좁히고 좁혀진 사방을 인식한다 대견하다 스스로 미안해하는 코끼리의 산책은 채 열걸음 으로 재한된다 되도록 하는 개별들의 곡해는 충분하다 때가 되면 검정을 거둔다 사방의 밖에서 상징이 날개를 숨기고 기어들어오면 코끼리는 빌딩처럼 운다 위를 지탱하는 지하를 과잉해대며 작위해낼 수 있다 코끼리의 환희는 벽돌로 이루어져 있어 나는 코끼리 몰래 코끼리의 집을 빛과 그림자의 철학으로 짓는다 코끼리의 태양은 향유고래로 이루어져 있어 코끼리는 코끼리에 밀려난다 폭풍은 코끼리를 코끼리와 화해시키고자 하지만 코끼리는 나의 품으로 들어와 갈대로 이루어진 꼬리를 다정한 작위로 흔든다 코끼리의 부담으로 코끼리의 작위로 코의 작위로 코끼리는 나의 확신을 작위해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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