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 시인(통영) / 오동꽃 근처
딩동딩당 오동나무가 허공을 향해 주렁주렁 주렁주렁 나아간다 오동꽃은 탱금 없이도 거문고 가야금 산조다 저 보라를 보라 보라 보라 그렁이는 꽃초롱이 가지마다 사무치는 장단에 오동동동 취해서 어떤 어여쁘디 어여쁜 비밀의 비밀이 되려고 밀애의 밀애가 되려고
내 생애도 딩동딩당 나아가고 싶다 저물도록 잘 모시고 싶다
김혜숙 시인(통영) / 바람의 목청
어떤 새라도 좋다 바람의 울대 되어 울 수만 있다면
긴 목청 꽈서 오솔길 내고 서늘한 줄기로 숲을 길러내는 낭자한 저 부름 음표의 자유 굴러서 어디론가 사라지기에 일그러진 내 몸 찾아나서듯, 그러면 스산하던 바람결도 고즈넉한 훈풍의 길을 갈 것이네 비틀거린 생애도 처량하지 않을 것이네
툭, 툭 치는 바람 소리 섞여 오, 그리운 청음靑音도 들려오리
김혜숙 시인(통영) / 바람의 연주
막이 오르자 창백하던 바이올린 달아오른다
눈 감고 고개 수그리고 바람을 쓸어본다
잔잔한 흐느낌 저쪽 거칠게 흔들리는 이별이 일어선다 가끔 저녁일기 일기 같은 낮은 음절 사라진 계절의 파장인가 꽃잎들 흘러내린다
바이올린! 서글픔은 보이지 않게 하라 간직한 슬픈 샘 깊더라도 부디
김혜숙 시인(통영) / 첼로의 손
한 그루 나무 몹시 흔들립니다 깊은 울음 땅으로 집니다 고개 숙이는 빗방울들 차르르 차르르 따라 내려가 격랑의 음계를 더듬습니다 축축해져서 고개 드는 나무 젖은 눈매 아름답군요 무척 아름답군요
이 세상 침울하여도 마음 저을 줄 아는 첼로의 손이 진눈깨비도 황홀한 꽃으로 피워냅니다
무거운 나를 데리고 가는 저 푸른 흔들림
김혜숙 시인(통영) / 폭포
울음 한 자락 부욱 찢는다
통곡도 이쯤이면 후련도 하려나
사는 일 휘돌면서 때론 폭포가 되고 싶은
물 젖은 생애도 가락을 타 흘러내리며 더러 산국山菊도 피었건만
남은 생生은 치장하고 싶다 울음 버티는 무지개로
김혜숙 시인(통영) / 시의 우수 -세자트라 시비 곁에서
사월 어느 하루 시를 심고 눕힌 흙은 아름다웠다 엎드린 숲도 그러했다 몸소 눕거나 서 있지 않아도 창공은 이미 알고 있었고 새순 번지며 솟는 나무는 유채꽃 너머 푸른 바다로 가자 하지만 멀리서 달려온 이가 목이 메는 시를 낭송하고 모두는 가지런히 시에 닿았다 고요히 누운 시 곁으로 유장하게 흐르는 우수 유성流星에 핀 한 송이 꽃 시들지 않는 영원에 우산도 없는 비 선율 되어 내리는 처연한 '고故를 달고 누운 시 곁에서 어린 올리브 한 그루 우수를 머금고 자랄 것이다
* 『통영문학』 2021년 vol. 40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신율리 시인 / 비 오는 날의 스페인 외 4편 (0) | 2022.09.06 |
---|---|
Daisy Kim 시인 / 허들 (0) | 2022.09.06 |
송희지 / 난바(難波) (0) | 2022.09.06 |
이희국 시인 / 별에게 묻다 외 1편 (0) | 2022.09.06 |
김현숙 시인(동시) / 터진다 외 12편 (0) | 2022.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