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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혜숙 시인(통영) / 오동꽃 근처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6.

김혜숙 시인(통영) / 오동꽃 근처

 

 

딩동딩당

오동나무가 허공을 향해

주렁주렁 주렁주렁 나아간다

오동꽃은 탱금 없이도

거문고 가야금 산조다

저 보라를 보라 보라 보라

그렁이는 꽃초롱이

가지마다 사무치는 장단에

오동동동 취해서 어떤

어여쁘디 어여쁜

비밀의 비밀이 되려고

밀애의 밀애가 되려고

 

내 생애도

딩동딩당 나아가고 싶다

저물도록 잘 모시고 싶다

 

 


 

 

김혜숙 시인(통영) / 바람의 목청

 

 

어떤 새라도 좋다

바람의 울대 되어 울 수만 있다면

 

긴 목청 꽈서 오솔길 내고

서늘한 줄기로 숲을 길러내는

낭자한 저 부름 음표의 자유

굴러서 어디론가 사라지기에

일그러진 내 몸 찾아나서듯,

그러면 스산하던 바람결도

고즈넉한 훈풍의 길을 갈 것이네

비틀거린 생애도 처량하지 않을 것이네

 

툭, 툭 치는 바람 소리

섞여

오, 그리운 청음靑音도 들려오리

 

 


 

 

김혜숙 시인(통영) / 바람의 연주

 

 

막이 오르자

창백하던 바이올린

달아오른다

 

눈 감고

고개 수그리고

바람을 쓸어본다

 

잔잔한 흐느낌 저쪽

거칠게 흔들리는 이별이 일어선다

가끔 저녁일기 일기 같은 낮은 음절

사라진 계절의 파장인가

꽃잎들 흘러내린다

 

바이올린!

서글픔은 보이지 않게 하라

간직한 슬픈 샘 깊더라도

부디

 

 


 

 

김혜숙 시인(통영) / 첼로의 손

 

 

한 그루 나무 몹시 흔들립니다

깊은 울음

땅으로 집니다

고개 숙이는 빗방울들 차르르 차르르

따라 내려가

격랑의 음계를 더듬습니다

축축해져서 고개 드는 나무

젖은 눈매

아름답군요 무척 아름답군요

 

이 세상 침울하여도

마음 저을 줄 아는

첼로의 손이

진눈깨비도 황홀한 꽃으로 피워냅니다

 

무거운 나를 데리고 가는 저 푸른 흔들림

 

 


 

 

김혜숙 시인(통영) / 폭포

 

 

울음 한 자락

부욱 찢는다

 

통곡도

이쯤이면

후련도 하려나

 

사는 일 휘돌면서

때론

폭포가 되고 싶은

 

물 젖은 생애도 가락을 타

흘러내리며 더러

산국山菊도 피었건만

 

남은 생生은

치장하고 싶다

울음 버티는 무지개로

 

 


 

 

김혜숙 시인(통영) / 시의 우수

-세자트라 시비 곁에서

 

 

사월 어느 하루

시를 심고 눕힌 흙은 아름다웠다

엎드린 숲도 그러했다

몸소 눕거나 서 있지 않아도

창공은 이미 알고 있었고

새순 번지며 솟는 나무는

유채꽃 너머 푸른 바다로 가자 하지만

멀리서 달려온 이가 목이 메는 시를 낭송하고

모두는 가지런히 시에 닿았다

고요히 누운 시 곁으로 유장하게 흐르는 우수

유성流星에 핀 한 송이 꽃 시들지 않는 영원에

우산도 없는 비 선율 되어 내리는

처연한 '고故를 달고 누운 시 곁에서

어린 올리브 한 그루

우수를 머금고 자랄 것이다

 

* 『통영문학』 2021년 vol. 40

 

 


 

김혜숙 시인(통영)

경남 통영 출생. 세종대학 음대 기악과 졸업. 198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너는 가을이 되어> <내 아직 못 만난 풍경> <바람의 목청> <시의 본색> <비밀이다> 시선집 <그림에서>. 경남가톨릭문학회 회장. 경남문협 부회장. 수향수필문학회 회장. 통영문협회장역임. 월간문학 우수작품상 수상. 전직 중,고등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