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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심창만 시인 / 수련(睡蓮)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7.

심창만 시인 / 수련(睡蓮)

선정(禪定)은 조는 것

풀끝에서 뿌리로

졸음을 밟고 내려가는 것

내려가 맨발로 진흙을 밟는 것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차지게 뭉개내는 것

물비린내 나도록

발자국을 지우는 것

지운 얼굴 위로 물을 채우는 것

물방개처럼 허우적대지 않고

구름의 실뿌리를 놓아주는 것

오후 두 시에도 순례자를 맞는 것

그의 빈 꽃받침 위에 잠시 머무는 것

그의 친구의 꽃받침 위에도 나누어 머무는 것

이런 날은 늦게까지 하루를 놓아주는 것

 

그러나 잊지 않는 것

물 마당을 쓸어놓고 어둠을 맞는 일

밤 깊은 실뿌리부터 다시 밟는 일

정수리가 환하도록

밤새 진흙을 밟는 일

진흙을 밟고

아침 끝에 올라앉는 일

 

공정한 시인의 사회(2019, 8월호)

 

 


 

 

심창만 시인 / 마장동 고기시장

 

 

협객처럼,

육림의 숲을 지나가네

 

머리 발톱 내장 털

다 떼어낸

비릿한 이완

 

그 핏빛 그늘을 딛고

식은 비명이 따라오네

 

뒤꿈치를 들고

한 근 고기를 들고 가는

내 뒤에서

참수된 목들이 숨죽여 웃고 있네

 

죽어서도 다 펴지 못한

뒷다리들의 오금

 

그 습한 불안이

나를 사정없이 걷어차네

 


 

심창만 시인

1961년 전북 임실에서 출생.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 1988시문학우수작품상 수상. 1997년 계간 문학동네로 본격적인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무인등대에서 휘파람(푸른사상, 2012)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