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만 시인 / 수련(睡蓮) 선정(禪定)은 조는 것 풀끝에서 뿌리로 졸음을 밟고 내려가는 것 내려가 맨발로 진흙을 밟는 것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차지게 뭉개내는 것 물비린내 나도록 발자국을 지우는 것 지운 얼굴 위로 물을 채우는 것 물방개처럼 허우적대지 않고 구름의 실뿌리를 놓아주는 것 오후 두 시에도 순례자를 맞는 것 그의 빈 꽃받침 위에 잠시 머무는 것 그의 친구의 꽃받침 위에도 나누어 머무는 것 이런 날은 늦게까지 하루를 놓아주는 것 그러나 잊지 않는 것 물 마당을 쓸어놓고 어둠을 맞는 일 밤 깊은 실뿌리부터 다시 밟는 일 정수리가 환하도록 밤새 진흙을 밟는 일 진흙을 밟고 아침 끝에 올라앉는 일 ㅡ『공정한 시인의 사회』(2019, 8월호) 심창만 시인 / 마장동 고기시장 협객처럼, 육림의 숲을 지나가네 머리 발톱 내장 털 다 떼어낸 비릿한 이완 그 핏빛 그늘을 딛고 식은 비명이 따라오네 뒤꿈치를 들고 한 근 고기를 들고 가는 내 뒤에서 참수된 목들이 숨죽여 웃고 있네 죽어서도 다 펴지 못한 뒷다리들의 오금 그 습한 불안이 나를 사정없이 걷어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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