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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심호택 시인 / 하늘밥도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23.

심호택 시인 / 하늘밥도둑

 

 

 망나니가 아닐 수야 없지

 날개까지 돋친 놈이

 멀쩡한 놈이

 공연히 남의 집 곡식줄기나 분지르고 다니니

 이름도 어디서 순 건달 이름이다만

 괜찮다 요샛날은

 밥도둑쯤 별것도 아니란다

 우리들 한 뜨락의 작은 벗이었으니

 땅강아지, 만나면 예처럼 불러주련만

 너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살아보자고, 우리들 타고난 대로

 살아갈 희망이 있다고

 그 막막한 아침 모래밭 네가 헤쳐갔듯이

 나 또한 긴 한세월을 건너왔다만

 너는 왜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 거냐?

 하늘밥도둑아 얼굴 좀 보자

 세상에 벼라별 도적놈 각종으로 생겨나서

 너는 이제 이름도 꺼내지 못하리

 나와 보면 안단다

 부끄러워 말고 나오너라

 

 


 

 

심호택 시인 / 봄밤

 

 

독새풀 아래 도랑물 소리

건너편 과수원 딱따구리 소리

간간이 개 짖는 소리

내 품에 잠들어라 뒷동산에 유행가

따라가는 하모니카 소리

어디서 깔깔 간지럼타는 소리에도

녹짝지근한 사랑이 콸콸 쏟아질 듯한

그런 봄밤

다시는 안 허께유―――

다시는 안 허께유―――

매맞으며 우는 소리도 끼여드는 밤

 

 


 

심호택 시인 (1947~2010)

1947년 전북 옥구 출생. 외국어대 불어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91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빈자의 개」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1992년 첫시집 『하늘밥도둑』 간행. 1995년 두번째 시집 『최대의 풍경』과 『미주리의 봄』 『자몽의 추억』 등을 간행. 원광대 불문과 교수 역임. 2010년 1월 30일 교통사고로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