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현 시인(예천) / 멍때리기
한강 고수부지에서 멍때리기 대회가 열린다 돗자리 하나 깔고 눈만 껌벅껌벅 잘하는 게 하나 없는 나도 자신 있다
창밖을 멍하니 보는데 가로등 전깃줄을 타고 고릴라가 휙휙 버스 위에는 좀비 떼가 달라붙어 있다
펼쳐 놓은 책을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톡톡 뭐 하니? 물으셨다 선생님 제가 곧 대회에 나갈 거거든요 무슨 대회? 멍때리기 대회요 그런데 자꾸 딴생각이 나요 김민서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다음 페이지 넘겨 넵! 선생님 그러고는 다시 멍
-시집 『악몽을 수집하는 아이』, 창비교육, 2022
임수현 시인(예천) / 한 다발
대각선으로 짧게 자르세요 꽃집 점원은 한 다발의 꽃을 내게 안기며 당부한다
목이 좁은 꽃병은 한 다발이 버거웠지만
그래서 불안 아름다운 물관 당신과 금붕어를 동시에 키우고 싶었나 봐
왜 자꾸 뻐끔뻐끔 숨이 찰까
오래가요? 오래가요! 질문과 답이 한 종이에 있는 오픈 북 시험처럼 처음 금붕어란 이름의 금붕어를 찾아 서로의 무늬를 지우면 더 오래 헤엄칠 수 있었을까?
우리가 함께라면
서로의 무늬로 비스듬히 어깨를 기대도 좋았을 거야
끝끝내 우리는 서로를 알 수 없어 뿌옇게 흐려질 수 있었다
어항도 되고 꽃병도 되는 이곳에서는 모두가 한순간이라고 말한다
시집 『아는 낱말의 수만큼 밤이 되겠지』, 걷는사람,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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