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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해욱 시인 / 음악이 없는 실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6.

신해욱 시인 / 음악이 없는 실내

 

 

내부 공사 중입니다

 

밤은 되도록 깊습니다

밤만큼이나

가제도구들의 영혼도 깊어가고 있습니다

 

선풍기가 돌아갑니다

 

내복을 입은 사람은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다리미는 사은품이고

 

촛농은 속죄 없이 떨어지고

 

나머지는, 들어보죠, 들어보겠습니다. 천장에는 의자를 끄는 소리, 지하에는 헐거운 문짝이 집요하게 닫히는 소리, 서쪽 방에는 전단지가 찢어 지는 소리, 동쪽 방에는 냉장고가 웅웅거리는 소리, 창밖의 담벼락에는 담쟁이덩굴이 끈끈하게 자라는 소리, 상상 밖에는 상상을 이탈한 시계의 초침 소리,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신해욱 시인 / 프릭 쇼

 

 

새 옷을 열 개쯤 껴입고 새 사람이 된 광대와

태어날 때부터 입고 있던 옷으로 땀을 훔치는 광대가

하이파이브를 하고

팔짱을 끼고

가면을 빼앗긴 광대의 적나라한 인격을 위해

랄랄라 돌고 돌며 노래를 한다

 

      발바닥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았다네

      발바닥엔 얼마큼 싱거운 물을 주어야 할까

      싹을 키우면 발바닥은 뿌듯할까

      싹을 뽑으면 발바닥은 시원할까

 

랄랄라 우리는 양말을 사랑하고

광대는 신발끈이 밟혀 넘어지고

 

      머리를 땅에 묻고 흙냄새를 맡을까

      감자처럼 착하게

      고구마처럼 듬직하게

      하늘로 하늘로 발바닥을 뻗어볼까

 

랄랄라 광대는 혀가 짧고

우리의 귀는 수제비처럼 뜯어지고

 

      후렴은 누가 하지?

 

우리의 만면에는 갸륵함이 넘치는데

 

광대의 엉덩이는 이름을 쓰고 있는데

 

 


 

신해욱 시인

1974년 춘천에서 출생. 한림대학교 국문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8년 《세계일보》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무족영원』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