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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진란 시인 / 새의 의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6.

진란 시인 / 새의 의미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푸름으로 눈물을 버무려 촛농처럼 떨어져 내리던 밤새 상념들도 해답이 없다 길을 내지 않는다 그것으로 다다 없는 하늘에서 이젠 의미 없이 울지 않는 새 거기 있다고 한들 누가 볼 수 있을까 굳어지고 굳어져 가는 태 고의 화석으로나 남아 있을 짐작으로나 아는 역사가 길이 되어줄까 땀과 눈물로 범벅을 만들어 한 생을 열었다 하자

 

 하늘 역이 있어 간이역처럼 정차했다 하자

 

 몸을 벗은 허물은 무간으로 떨어지고 영혼은 어딘가로 길을 떠난다 하자 희희낙락하던 그 많은 날들이 태고의 이끼처럼 파랗게 남아 증거가 된다 하자 애비거나 에미거나 그 어느 조상의 허리에서부터 육신의 혈맥을 타고 나르던 새의 의미를 비상구에서 내려다본다 하자 여행자는 단지 떠나는 홀가분함으로 날아가고 남는 자는 무성한 눈물로 그의 길을 덮어놓을 뿐인 걸

 

 훌훌 녹아내리던 몸은

 거기 그렇게 남아

 이끼가 되고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의미 없이 웃는 새가 날

 아와 노래를 하고

 

웹진 『시인광장』 2022년 7월호 발표

 

 


 

진란 시인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2002년 계간《주변인과 詩》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혼자 노는 숲』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이 있음. 계간 『주변인과詩』 편집장과 월간『우리 詩』 교정위원 역임. 현재 계간 『문학과 사람』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