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인 시인 / 만추
덩치 큰 산짐승들이 내려와 인간의 살림을 뒤질 것이다
마음을 기꺼이 앓겠다는 각서라도 써야할 것이다
씻고 식탁을 정리하고 자정 넘어 잠자리에 들려는데 불현듯 행인1처럼 지나가는 생각
이 사랑은 무모하고 무용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들은 이유가 없다
바람은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낮고 느리게 불었지 그날 발목을 감는 바람은 어딘가 익숙한 데가 있었지
그것은 지표면의 것이 아닌 지구 내부 맨틀로부터 뛰쳐나온 거대한 짐승의 미친 열정이 내뱉는 신음 같은 것
지독한 번민의 날들을 부러 게으르게 지나고 있다
나의 사랑 더, 더, 더 쓸모없어질 테다
여름의 빛과 어둠이 응집된 열매들은 자정 너머에서 부스럭거리고
그리운 곳으로부터 바람은 분다
계간 『불교문예』 2022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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