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보 시인 / 그리운 세탁소
이맛살을 죄다 헹궈버린 그는 낙천주의자다. 세탁소 앞 사거리가 막힌다 해도 그의 미소는 언제나 일방통행이다.
다리미로 닦은 길이 개통된다면 백두산을 수 차례 오갔을 거라, 유일하게 펴지 못하는 주름은 세월뿐. 너스레를 떠는 대머리가 그 세탁소의 상징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지. 중앙선을 침범한 바퀴자국을 향해 다리미의 뿔을 거침없이 들이밀며 황소 콧김을 쏘아대는, 그는 영락없는 세탁장이다. 자르거나 깍지 않고도 칼 같은 주름을 새기지. 고향길 질조심하라! 주름은 양복 끝단까지 질주를 한다. 손가락 벨 듯 막힘없는 다림질을 낸다. 흩어진 잔주름들 한 줄로 끌어당기며 오늘도 그가 잡은 주름들이 거리를 주름잡고 활보한다. 최첨단 컴퓨터 드라이 크리닝, 우주선의 둥근 유리문을 여는 대머리 위로 몇 달째 다리를 넣지 못한 바지들이 우주복처럼 허공에 떠 있다. 찾아가지 못한 얼굴에는 벌써 구김살이 늘어갈 것이다.
고속도로처럼 매끈한 대머리 지나 눈가에 움푹 패인 주름하나, 일차선을 따라 그의 웃음이 질주한다. 그러나 잠시 쉬었다가도 좋다. 휴게소 같은 그의 눈, 그곳까지는 언제나 일방통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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