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시인 / 긴 여름
정신병동 철창 속 일 년 내내 여자는 강 소위만 있다 두꺼운 붙박이 유리창 너머 간호장교실에 그녀는 홀로 앉아 있다 아침 회진 시간 그녀가 흘리고 간 삼푸 냄새 진열된 병정인형들 같은 우리는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사열하듯 목을 우로 돌려 그녀의 백합 같은 젖가슴을 보고 있다 문짝 없는 변소 우리가 똥 싸는 것을 감시하는 위생병의 눈초리 우리는 날마다 약을 먹는다 그래도 총부리처럼 꼿꼿한 자지들 밤꽃 냄새 한 번 풍겨보지 못하고 스무 살 여름이 간다
이인철 시인 / 시화호의 안개
안개 자욱한 날엔 외사계 형사들이 오지 않는다 퇴근시간 비닐커튼 같은 안개를 헤치며 머뭇머뭇 나타나는 불법체류자들 발을 저는 네팔 노동자 애꾸눈 방글라데시인 오른손 잘린 파키스탄인
공단 둑 위 기우뚱한 컨테이너박스 속에서 그들은 비밀스런 파티를 연다 꼬불꼬불한 열대의 노래 절뚝이며 추는 외발의 춤 파티가 끝나고 그들은 뿔뿔이 안개 속으로 흩어진다
안개 속에 숨어 사는 사람들 시화호의 안개 속에는 늘 두리번거리는 커다란 눈들이 있다
2007 겨울-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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