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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인철 시인 / 긴 여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6.

이인철 시인 / 긴 여름

 

정신병동

철창

일 년 내내

여자는

강 소위만 있다

두꺼운 붙박이 유리창 너머

간호장교실에

그녀는 홀로 앉아 있다

아침 회진 시간

그녀가 흘리고 간 삼푸 냄새

진열된 병정인형들 같은 우리는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사열하듯 목을 우로 돌려

그녀의 백합 같은 젖가슴을 보고 있다

문짝 없는 변소

우리가 똥 싸는 것을 감시하는 위생병의 눈초리

우리는 날마다 약을 먹는다

그래도 총부리처럼 꼿꼿한 자지들

밤꽃 냄새 한 번 풍겨보지 못하고

스무 살 여름이 간다

 

 


 

 

이인철 시인 / 시화호의 안개

 

 

안개 자욱한 날엔

외사계 형사들이 오지 않는다

퇴근시간

비닐커튼 같은 안개를 헤치며

머뭇머뭇 나타나는 불법체류자들

발을 저는 네팔 노동자

애꾸눈 방글라데시인

오른손 잘린 파키스탄인

 

공단 둑 위 기우뚱한

컨테이너박스 속에서

그들은 비밀스런 파티를 연다

꼬불꼬불한 열대의 노래

절뚝이며 추는 외발의 춤

파티가 끝나고

그들은 뿔뿔이 안개 속으로 흩어진다

 

안개 속에 숨어 사는 사람들

시화호의 안개 속에는

늘 두리번거리는 커다란 눈들이 있다

 

2007 겨울-시평

 

 


 

이인철 시인

1961년 전북 순창에서 출생. 2003년  《심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회색 병동』(작가세계, 2012)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