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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분임 시인 / 풍경에 닿다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3.

최분임 시인 / 풍경에 닿다

-칠면초

 

 

갯골 폐염전이 남은 소금기를 내다파는 계절

귀들이 피었다

먼 바다 어미를 듣는 허기가 바글바글하다

 

손때 묻은 집이자 무덤일 원적지

쩍쩍 갈라진 틈으로 떠나지 못한 바닥

새초록한 기다림이 일어선다

 

어린 것들 재워 놓고 훌쩍 첫차에 오른 당신

아무 때나 젖 물던 기억에 입술을 가져가도

가슴을 더듬던 세월에 손을 흔들어도

 

돌아선 등허리 맞잡을 수 없는 비린내가

먼 수평선으로 불어날 때

늑골 속 차오르는 슬픔이 허연 소름으로 돋는다

 

그 새벽 비킨 시선으로 당신이 던진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 질문처럼 갯골을 휘도는 동안

격절의 시간은 시들 수 없어 구불구불하다

 

멈추지 못하는 그리움은

제풀에 꺾이거나 주저앉은 자세로도

하루를 견딜 표정을 만들고 꽃이 된다고

폐염전 파란만장 상처를 아득하게 듣는 저물녘

 

저녁놀로 공복을 채운 입들이

황홀한 근황인 듯 버려져 있다

 

-월간 『모던포엠』 2020년 7월호 발표

 

 


 

최분임 시인

경북 경주에서 출생.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4년 제12회 동서문학상 대상 수상하며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실리콘 소녀의 꿈』이 있음. 2005년. 제23회 마로니에 전국 여성백일장 산문부문 장원 수상. 2017년 제8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동서문학회, 소래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