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아킴 시인 / 고등어
돌아서는 등 뒤의 모습은 모두 푸르다
돌아설 수밖에 없는 견고한 이유들이 도처에 나열되지만 그 속엔 누구도 감당치 못할 멍 하나씩 발아되고 있다
결코 몇 방울의 눈물로 풀어낼 수 없는 시퍼런 물결에 수없이 맞고 맞아 기어이 바다빛이 되어버린 그날 저녁밥상에 아버지는 길게 드러누우셨다
불면의 눈으로 충혈된 실패는 파도의 허연 칼날을 붙잡고 다음 생을 기약하려던 몸부림처럼 뒤집혀진 등을 내보이며, 어린 식욕을 젓가락질로 자극했다
짠내 나는 먼 물살을 헤치는 슬픈 가장의 통점痛點이 스스로 그어놓은 선명한 줄무늬로 갓 길어 올린 그물처럼 걸려든다
등 뒤의 푸른 모습은 모두 돌아선다.
-시집 『공중부양사』 -애지시선87 - 중에서
김요아킴 시인 / 미안함에 대하여
단 한 장의 만 원 권을 건네고 거슬러 받아야 할 여러 장의 그 지폐에 미안하다
저녁 불빛이 켜지고 맵쓰린 바람이 하혈하는 수정역 입구, 불안하게 포장을 친 그 한 끼의 뜨거움에 미안하다
세상에 태어나 그리운 이 한 번도 호명하지 못한 언제 쫓길지 모르는 풍성한 식탁으로 초대하는 부부의 여린 그 손짓에 미안하다
새벽을 서두르며 싱싱한 야채를 보듬고 떡쌀 담근 방앗간을 기웃거리며 숙면을 취한 고추장 양념을 새로이 환생시킬 두 사람의 맛난 노동에 미안하다
얼마 되지 않을 이문에도 웃음을 버리지 않고 툭툭, 불거지는 관절마디로 꼬마 손님까지 채워주는 한 종지 사랑 쉽사리 은행인출기에서 꺼낸 나의 자본과 맞바꿔지는 그 역설에 더욱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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