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대 시인 / 아무르 강가에서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 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
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 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밑으로는 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밑의 어둠 내 머리 위의 어둠, 내 늑골에 첩첩이 쌓여 있는 어둠 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멩이 하나 뜨겁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보는 어둠 속에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야광나무 꽃잎들만 하얗게 돋아나던 이 지상의 저녁 정암사 적명보궁 같은 한 채의 추억을 간직한 채 나 오래도록 아무르 강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별빛을 향해 걷다가 어느덧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박정대 시인 / 아비라는 새의 울음소리는 늑대와 같다
아침마다 아비라는 새가 와서 울면 늑대가 우는 줄 알았다 가끔은 사람이 웃는 줄 알았다 간밤 늦게까지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창밖엔 눈이 내렸는지 온통 하얀데 아침부터 동백나무 숲이 창가로 와 나를 깨우며 우는 줄 알았다
바닥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빅또르 쪼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신고 있는 운동화가 지나온 길을 말해주었다 팔에 돋아난 힘줄은 알타이산맥보다 더 선명했다 그가 마시던 잔에는 어떤 노래가 담겨 있었던 걸까 그는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또 다시 다음에 부를 노래를 생각했을 것이다
아침마다 아비라는 새가 와서 울면 늑대가 우는 줄 알았다 가끔은 그가 노래를 부르는 줄 알았다 간밤 늦게까지 책을 읽으며 노래를 들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세상을 향해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아비라는 새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늑대와 같다고 생각했다
동백꽃잎 환하게 떠가는 강물을 보다가 알았다 아비라는 새의 울음소리는 늑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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