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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원희 시인 / 바람이 지나간 자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5.

이원희 시인 / 바람이 지나간 자리

 

 

내가 기대어선 것은 바람이었나 보다

맑은 햇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설레임으로 물결져 와서

은빛 꿈을 산란케 하고 사라지는 그는

푸른 열매 갈망하는 꽃대를 흔든다

흔들리는 만큼 쓸쓸함은 푸르러지는데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래도록

물결이 잔잔해지지 않았다

 

-시집 <사랑, 그 침묵> 중에서

 

 


 

 

이원희 시인 / 산을 오르며 2

 

 

겨울 타래실이 풀린다

얼음장 밑, 물방울 날갯짓 소리

나무의 튼 살마다 잎망울 영그는 소리

귀를 열며 산허리를 지난다

 

돌부리에 중심을 잃어도

겨울산에서 더욱 푸른 소나무 바라보며

풀리는 다리에 힘을 실어보지만

다 왔다는 정상은 가도 가도 닿지 않고

삶은 흘린 땀이 식어서 드는 한기에

다시 길을 가기도 하지

 

바람의 결을 따라 능선으로 올려진 눈 위로

햇살이 내려 앉는다

얼음 알갱이 알알이 비추는 저 빛

화들짝, 바람 한 켠이 깨어난다

제 속으로 햇살을 끌어안아도

녹지 않으며 반짝이는 눈처럼

나를 잃지 않고 세상을 품을 수 있다면

 

눈 덮인 산, 나무 밑 바위틈에서

얼은 몸 추스르며 꿈꾸는 봄

가지 끝, 마른 나뭇잎처럼 매달려 흔들리는

생을 부추긴다

 

 


 

이원희 시인

1960년 서울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전자계산학과 졸업. 2001년 《문학과 의식》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사랑, 그 침묵』(문학과의식, 2001), 『달과 통신하다』가 있음. 문인협회 평택지부 회원. 해바라기 동인. 한국 신시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