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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순진 시인 / 겨울 고향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29.

김순진 시인 / 겨울 고향집

 

 

씨옥수수 매달린 문설주엔 겨울바람이 동요처럼 불고

뽕나무 가지 덤부사리엔 뱁새 떼 콩 열리듯 열렸는데

들창 열고 기다리는 개똥찌빠귀 찌르찌르 전설을 울며

주렴처럼 매달린 고드름 사이 모자가 오순도순 실을 감는다.

 

국화꽃잎 넣어 바른 여닫이문엔 문풍지 윙윙 겨울을 외고

질화로 석쇠 위엔 가래떡 구수하게 익어 가는데

호랑이 달걀귀신 무서운 이야기 점점 더 소름이 돋아

마실 갔다 돌아가려 방문을 여니 눈 속에 신발이 파묻혀 있네

 

 


 

 

김순진 시인 / 겨드랑이 성경

 

 

나는 내 겨드랑이를 믿는다

언젠가는 날개가 돋아날 내 겨드랑이를 믿는다

병아리가 그랬던 것처럼 꺼병이가 그랬던 것처럼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나려면 빈 팔을 마구 저어야 한다

자꾸만 빈 팔을 저어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리다보면

언젠가 내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돋아나겠지

그날이 내일일 수도 있고 십 년 있다 돋아날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죽어서야 관을 박차고 날아오를 수도 있을 거야

그래도 나는 내 겨드랑이를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고

외국인을 만나면 짧은 영어로 길을 가르쳐준다

마치 여행 왔다 돈 떨어진 양 일본말로 구걸하는 청년이

수작임을 뻔히 알면서도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며 밥을 사먹으라 한다

병아리가 물 한 모금 먹고 하늘을 쳐다보는 이유는 날고 싶어서일 거야

나도 하늘을 날고 싶어 자주 하늘을 본다

땀이 날 때면 혹시 날개가 돋는 건 아닌가

겨드랑이를 들여다보면 곧 돋아날 것만 같은 날개의 기미가 보인다

나는 내 겨드랑이를 성경말씀처럼 믿는다

그래서 겨드랑이에 돋아날 그 아름다운 날개를 믿으며

겨드랑이 밑에 감춰진 천사의 날개를 위해 팔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마음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며 사람의 향기를 나누어

마침내 천사를 꿈꾼다

 

뭐, 시인은 이미 천사와 동급일 테지만

 

 


 

김순진 시인

1961년 경기도 포천 출생. 1984년 시집 『광대이야기』로 작품 활동 시작. 한국방송대 국문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 수료.  시집으로  『광대이야기』, 『복어화석』 , 『박살이 나도 좋을 청춘이여』 등 과 시창작이론서 『효과적인 시창작법』, 평론집 『자아 5, 희망 5의 적절한 등식』, 『오규원 시에 나타난 생태주의와 노장사상』 등의  15권의 저서가 있음. 현재 고려대 평생교육원 시창작과정 교수, 은평문인협회 회장, 은평예총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발행인.